누군가의 대표, 누군가의 선생님

우리 동네 보안관 10

by 신비

박사장은 업종을 바꾼 걸까요.



어느 날부터인지 박 사장네 회사에는
이런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하루를 묻는 전화.



안녕하세요. 저 ○○ 엄마입니다.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희 아이가 오늘은 어땠을까요.



배달 회사였던 그곳이 조금씩 다른 곳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기사들이 드나드는 배달대행 회사였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기 아이를 맡긴 곳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등학생 아이 하나가

배달을 하겠다고 찾아옵니다.


박 사장네는
구인 공고에도 확실한 규칙이 있었죠.


만 20세 이상.


처음부터 선이 분명한 곳이었습니다.
애매하게 넘어가지 않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얼버무리지도 않았습니다.


박 사장은 늘 그랬습니다.


선은 선이고, 책임은 책임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왜 배달을 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대충 하고 싶은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해보고 싶다는 가벼운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 어린 얼굴로 왜 자기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이유를 갖고 찾아온 아이였습니다.


박 사장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배달을 꼭 해야 한다면 부모님을 모셔와서
동의서를 쓴 후 다시 이야기하자고 합니다.



그 말은 거절도 아니었고 허락도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 하나를
‘노동력’으로 보지 않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뒤


정말로 부모님을 모시고 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말합니다.



대표님,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한다고 안 할 아이가 아닙니다.


그동안 부모 몰래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나거나, 오토바이 렌트 및 리스 문제로 문제도 많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래서 왔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을 보니까 조금 안심이 됩니다.


저희 아이를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그 부탁은

그저 일을 시켜 달라는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말려도 안 되는 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 조금이라도 바르게 봐달라는 부탁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마지막에 기대는 사람은
대체로 ‘좋은 사람’입니다.


그날 그 부모님들 눈에 박 사장은

그런 사람이었던 겁니다.


박 사장은 참 고민이 많습니다.
괜히 받았다가 아이 하나 인생을 그르칠 수도 있고,
괜히 거절했다가 더 위험한 곳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끝내 입을 엽니다.
방학에도 9시 전까지만 일해야 하며,
학교는 무조건, 절대적으로 다녀야 하고,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앞으로의 진로를 상담해야 하고,
검정고시도 함께 준비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험은 무조건이어야 했고,
오토바이 렌트 및 리스 문제는 너희가 사고를 치면
온전히 부모님께 책임이 간다는 무거운 조건도 붙었습니다.


그건 일을 시키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아이를 맡기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박 사장은 처음부터
돈보다 책임을 먼저 놓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받는다는 건 그 사람 손 하나 더 늘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 인생이 내 눈앞으로 들어온다는 뜻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 이후로
부모님들께 박 사장은 매일 문자를 보냈습니다.


보내달라고 하진 않았으나, 의무라기보다는

박 사장도 아버지였으니 어느새 일과 같은 일이 되어버렸죠.


오늘은 어땠는지,
사고는 없었는지,
밥은 먹었는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습니다.


회사 규정에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했습니다.

사고란 사고는 몰고 다니는 녀석도 있었고,
그저 오토바이가 좋아서 폭주를 뛰고 싶어서
오토바이 타러 온 녀석도 있었고, 사고뭉치, 꼴통들, 젊은 나이에 객기까지 가득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참 답답한 아이들이었을 겁니다.
말도 안 듣고, 겁도 없고, 무슨 일이 터져야 그제야 놀라는 아이들.



하지만
박 사장은 그런 아이들 앞에서

절대 굴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아주 단호하게 소리를 지릅니다.


씩씩거리며 덤비는 아이들도 있었고,
억울하다고 우는 아이도 있었죠.


그럴 때 박 사장은 말합니다.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마.


그리고 너네 행동에 책임은

너네가 질 수 있는 행동만 해야 하는 거야.


너네가 도와 달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도와줄 거야.


절대 숨기지 마라.

그땐 도와주고 싶어도 못도와주니까.



좋은 사람은
무조건 다정한 사람만은 아닙니다.


혼내야 할 때 혼내고, 막아야 할 때 막고,
거짓말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도
좋은 사람입니다.


박 사장이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그를 처음에는 잔소리 많고 피곤한 어른으로 봤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을 겁니다.



이 사람은 우리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사람이구나.



그걸 이해 못 하는 녀석들도 있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녀석들도
조금씩 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당근과 채찍이 확실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처음으로 자기 행동을 끝까지 봐주는 어른을 만나서였을까요.


하물며 손톱 검사도 합니다.


손톱 자르랬지. 이리 와.


그리고 직접 잘라줍니다.


누군가에게는 웃기는 장면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그게 처음 받는 관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 배고플 나이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밥은?



배시시 웃으며 아이들은 말하죠.



배고파요, 대표님.


그 한마디에 잔소리하던 어른 얼굴이 풀리고,
박대표는 밥을 챙겨 줍니다.


배고픔을 챙겨주는 어른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일하는 라이더들도
조금씩 변화를 보탭니다.


목욕비를 주며 목욕탕 다녀와.
먹을 것을 나눠 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키웁니다.


회사가 돈만 버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배우는 곳이 되어갑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생각만 하던 아이들이
돈을 벌게 되고, 큰맘 먹고 커피를 회사 형, 누나들에게 돌립니다.



얼마 전까지는 자기밖에 모르던 아이들이
이제는 누군가를 걱정하고, 누군가를 챙기고,
책임감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안전과 질서, 그리고 스스로를 자제하는 법까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순간에 한 번 더 멈출 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그걸 배우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잔소리 대마왕, 꼰대처럼 보였을 겁니다.
매일 상담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어떤 아이에게는 귀찮고,
어떤 아이에게는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대표님, 저 고민이 있습니다
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사람은
믿는 사람 앞에서만 고민을 꺼냅니다.

그 아이들이 먼저 입을 연다는 건,

박 사장이 어느새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이바, 복장 문제도
단호하게 할 때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새로운 라이더가 들어오면 먼저 말합니다.



헬멧 똑바로 쓰셔야 안전하고요.
슬리퍼는 절대 신으시면 안 돼요.



잔소리를 싫어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잔소리를 먼저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박 사장에게는 매우 피곤한 하루였을 겁니다.


눈으로 보고,
혼내고,
달래고,
문자 보내고,
상담하고,
사고 막고,
밥 챙기고,
부모와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그걸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배달만 시키면 되지 않냐고.
그냥 돈 벌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박 사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배달만 잘하면 되는 것이 박 사장의 기준은 아니었습니다.


그 피곤은 그저 피곤이 아니었습니다.
그 피곤은 누군가를 바꾸고 있었고,
누군가를 살리고 있었고,


누군가의 미래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소통을 하며 기쁜 일, 슬픈 일까지
부모님들과 나누게 됩니다.


어떤 날은 문자로 안부를 전하고,
어떤 날은 전화를 받고,


어떤 날은

한 아이의 진로 이야기를 같이 고민합니다.


부모님들은 점점 알게 되었을 겁니다.


우리 아이가
지금 단순히 일을 배우고 있는 게 아니라,
어른을 만나고 있구나.



그런 부모님들은
명절이든, 스승의 날이든 작은 선물들을 보내셨죠.
감사합니다, 라며.



그 말은
예의가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박 사장은 부모들에게
선생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의 대표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잔소리 많은 어른이었고,
부모들에게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른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은
말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챙길 때
좋은 사람이 됩니다.



사람 하나를 맡는다는 건
그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일에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겠다고 마음먹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대표가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는 일도 대단한 자격증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너질 때
끝까지 옆에 남아주는 것으로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사장은 그걸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어른은
아이를 혼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혼내고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끝내 사람으로 남게 하는 일입니다.




그곳은 회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어른을 만난 곳이었습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