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보안관 8
어떤 이의 이야기입니다. 3
아이가 화가 나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문을 열자마자 이것저것 먼저 쏟아놓을 아이가, 그날은 가방만 던져놓고 입을 꾹 다문 채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괜히 물건을 툭 내려놓고, 대답도 짧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우리 딸, 기분이 왜 안 좋아?”
아이는 한동안 혼자 투덜대듯 입술만 삐죽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냅니다.
“나랑 친하던 ○○ 있잖아. 절교했어.”
왜냐고 묻자,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부모님 직업을 발표해 볼 사람 있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빠는 배달일을 합니다.”
그 말이 아이에게는 부끄러운 고백이 아니라 자랑이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의사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회사원이라고 말하듯, 아이는 자기 아빠가 하는 일을 그냥 자기 아빠의 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어떤 한 아이가 말했답니다.
“너네 아빠 딸배야?”
몇몇 아이들은 옆에서 “헐.”, “대박.” 하고 반응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들이 어떤 뜻으로 던져졌는지 아이도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작아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급할 때, 먹고 싶은 음식 있을 때, 배고플 때 빠르고 안전하게 가져다주는 일이야.”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희 아버지 멋지시다. 정말 우리 일상에 꼭 필요한 일이야.”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괜찮아진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이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누군가의 직업을 두고 웃던 공기가 정리되고, 아이가 꺼낸 마음도 괜찮다고 인정받은 것 같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며칠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냈습니다.
친했던 친구와 인사는 했지만 예전 같지 않았고,
대화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아이는 느꼈습니다.
뭔가 달라졌다는 걸.
말은 사라지지 않고 천천히 번집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작아서 어른들의
시선이 더 빨리 퍼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가 먼저 말을 겁니다.
“오늘 끝나고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래?”
그런데 돌아온 말은 짧고 차가웠다고 했습니다.
“아니.”
아이는 이상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너 요즘 왜 인사도 안 하고 나랑 말도 안 해?”
그러자 그 아이가 말했답니다.
“미안한데 엄마 아빠가 너랑 놀지 말래. 미안해.”
아이는 왜냐고 물었습니다.
“왜? 왜 놀지 말래?”
그러자 돌아온 말.
“너네 아빠 배달한댔는데 그냥 너랑 멀리하래”
그 말을 듣고 아이도 결국 울컥해서 말했다고 했습니다.
“나도 이상한 너랑 친구 안 해.”
그렇게 절교를 했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도 씩씩거렸지만,
사실 화가 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속상했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빠가
왜 누군가에게는 멀리해야 할 이유가 되는지. 배달을 한다는 말이 왜 친구를 잃는 말이 되는지.
아이는 아직 다 알지 못했지만, 이미 너무 일찍 세상의 시선을 배워버린 얼굴이었습니다.
사람은 경험으로 배우기 전에
타인의 시선으로 먼저 배웁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빠르게 닮아갑니다.
더 아픈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밖에서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아빠는 아이를 먼저 모른 척할 때가 있었습니다.
괜히
“쟤 아빠 배달하네.”
그런 말이 또 나올까 봐.
아이가 혹시라도 괜한 시선을 받을까 봐.
그래서 먼저 고개를 돌렸습니다.
모른 척하고 지나갔습니다.
아빠는 아이를 지키려다
아이 앞에서 스스로를 숨깁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늘 그랬습니다.
멀리서 아빠를 보면 먼저 손을 흔들며 소리쳤습니다.
“아빠다!”
그 아이는 숨지 않았습니다.
숨은 건 오히려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아이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둘러싼 시선이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직업을 모릅니다.
사람을 먼저 봅니다.
그래서 더 정확합니다.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제일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었습니다.
처음으로 톤업이 되는 선크림도 사서 발랐습니다. 얼굴에 바르고, 목에도 바르고, 손등에도 발랐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선크림을 산 것도, 그리고 얼굴과 목, 손에까지 선크림을 바른다는 것이.
사실 손은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사계절 내내 햇빛에 노출되어 유독 까맣게 탄 손이었습니다. 선크림을 바른다고 해서 그 세월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색이 금방 옅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까매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단정해 보이고 싶은 마음. 조금이라도 아이가 덜 위축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바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는 그 손을 내내 감추고 있었지요.
숨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없는데
사람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자꾸 자신을 접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낸 손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미끄러운 손잡이를 붙잡고, 한여름 땡볕을 견디고,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핸들을 잡았던 손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식사를 늦지 않게 가져다주려고 쉬지 않고 움직인 손이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시작한 일이 그 손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을 뿐입니다.
세상은 결과를 보지만 손은 과정을 기억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그 일 때문에 내 아이가 속상한 일을 겪습니다.
이게 맞는 걸까요.
속상해야 하는 쪽이 정말 아이인 걸까요.
부끄러워해야 하는 쪽이 정말 아빠인 걸까요.
배달 직업이 그렇게 하찮은 걸까요.
누군가는 툭 던진 말이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아무 뜻 없이 따라 한 반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친구를 잃는 말이 되었고, 어떤 아버지에게는 위축되어 자기 손을 감추게 만드는 일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너무 쉽게 직업으로 사람의 값을 매기고, 너무 쉽게 먹고사는 일을 서열로 나눕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모두가 바쁘고, 모두가 지쳐 있고, 모두가 배고플 때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찾습니다.
필요할 때는 찾고, 소개할 때는 숨기게 만드는 일.
없으면 불편하면서, 있다고 하면 선을 긋는 일.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먹고살면서도,
정작 그 삶은 낮춰 보는 시선.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와 존중이 아니라
보여짐과 편견이 되는 순간.
누군가는 조용히 상처를 감춥니다.
정말 하찮은 건 직업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의 일을 사람의 값으로 보지 못하는 그 시선이었을까요.
아빠는 그날 아이의 말보다, 아이 앞에서 괜히 손을 감추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아이는 끝까지 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저는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저를 먼저 숨기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아빠보다 더 단단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빠는 배달일을 합니다.”라고 말한 건 직업을 소개한 게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미안했습니다.
살려고 시작한 일이 아이를 울게 했다는 것이.
그런데 또 끝내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살아야 했으니까요. 먹여야 했으니까요. 내일도 다시 나가야 했으니까요.
세상은 직업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아이는 아직 사람을 보고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그래서 더 버텨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배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를 저라는 이유만으로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딸,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