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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헤더 Apr 16. 2024

아이 친구의 엄마들 사이에서 편하게 있으려면

엄마들 사이에서 느슨해질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예전에는 어떤 모임에서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을 만나고 오면 찝찝하고 만났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아니,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대화나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고 오면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오래 알던 사람들도, 무척이나 친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날 만났을 때 돈을 주고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명품 가방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여행을 갈 때 어떤 항공에 어떤 좌석을 타고 가는지,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피부과에 매달 얼마나 투자하는지, 자기가 아는 부자 인맥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어 잔뜩 늘어놓는 ‘누구는 이렇게 산다 누구는 저렇게 산다’는 이야기들.


엄마들의 모임들 중에 자식들 키우는 이야기, 특히나 사교육 정보나 육아 정보라도 서로 공유하면 그 모임은 좋든 싫든 나가게 된다.  나의 아이보다 더 나이 많은 아이를 ‘내 눈에 보이기에 아주 잘’ 키우는 엄마로부터는 내가 배울 점이 많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누가 누가 더 잘 사나’ 드리마 제목 ‘행복배틀’ 수준의 대화들이 오고 가게 되면 그날 모임을 다녀온 뒤 내가 들인 시간, 노력, 돈은 허공에 날아간 것 같이 찝찝하고 기분이 안 좋다.


그렇다고 아이와 관련된, 나와 관련된 모든 모임에 나가지 않고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이 맞는 것일까.  물론 그랬던 적도 있다.  나를 싫어하는 듯한 사람이 주도하는, 정말 내가 못 견딜 정도의 속물 대화들이 오고 가는 단체창에서 쥐 죽은 듯이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왕따 되기를 자처한 적 있고, 묘하게 지속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저격하는 나에 많은 내 아이 동갑 인구의 엄마는 도저히 만나기 싫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엄마가 있는 모임은 나를 빼고 가라며 선포한 적도 있었다.  물론 끝까지 견디며 버텨본 모임도 있다.  자존심이 상해도 꾹 참으며 그 속에서 버텼던 모임은 대부분 내 자식하고 떼어낼래도 떼어내기 힘든 그룹이었다.  그곳에서는 나 자신이 아닌 내 아이의 엄마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버텼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이렇게 사회 속에서 치열하고도 치열한 아이 엄마들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엄마들 세계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사회생활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워킹맘들도 입 아프게 말한다.  사회생활이 엄마들 세계보다 쉽다는 뜻이 아니라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짜증 나게 하는지 말이다.  밥벌이가 걸려있든 자식이 걸려있든 내가 아무리 꼿꼿하게 살고 싶어도 비굴하고 치욕스러운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내 자식이 공부 1등을 한다 하여, 내가 그 무리 중 제일 잔 산다 하여, 내 능력이 너무 뛰어난다 하여 그저 쉽게 살아남아지지도 않는 곳이 엄마들의 세상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세상이기 이전에 아이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사회이기 이전에 아이들의 사회이고, 그 사회는 엄마들이 모두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이만큼 아이들을 키우며 느낀 건


첫 번째, 내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 내 아이가 사회에서 피해를 주지 않고 사려 깊고 배려 깊지만 단단하고 강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면 내 자식을 믿게 된다. 내 아이에 대한 믿음에 있다면 남들의 말들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남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내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고, 내 아이의 말을 먼저 믿게 된다.  그러면 엄마들의 말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 내 아이가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도 되니 내가 비굴해질 일은 당연히 없다.


두 번째 , 내가 느슨해야 한다. 내 마음이 느슨해서 남들이 하는 말에 찔리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이 나를 비꼬면 ‘아 너는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것을 눈을 보고 웃으면서 반복해서 말해주면 아주 우아하게 반문하는 것이다. ’네가 나를 공격하려는 거 난 지금 알고 있어.‘라고. 예를 들어 ‘너는 왜 학원을 안 보내? 공부 좀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어본다면 ‘아 그래? 왜 학원을 가야 하는데? 지금 공부를 어디까지 시켜야 하는데?’라고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일리가 있으면 ‘네 말에 일리가 있네. 나도 좀 알려줘.’ 라며 좋은 정보를 받아내면 되는 거고, 전혀 논리가 없는 이야기라면 ‘그래, 나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구나’라고 말한 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이 두 가지만 신경 써도 엄마들 세계에서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관대해질 수 있다는 건 부수적인 보너스.  삶이 빡빡하고 힘들다고 느껴질수록 잘난 척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그녀들이라고 생각을 하자.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사람일수록 숨구멍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냥 ‘너는 그렇구나’ 라며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말들로 인해 짜증 나고 신경질 나고 화딱지 나는 감정들에 에너지 소모를 하기보다는 내 자식 잘 키우고 바르게 행복하게 키우는 곳에 더 신경 쓰면 되니까.  누군가 나를 짜증 나게 할수록 나는 내 아이에게 더 친절하고 다정하고 단단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해 보자.  그러면 그깟 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이 것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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