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3월 8일. 아카데미 첫 수업을 듣고 왔다. 많은 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이 생각들을 잊어버릴까 봐 급하게 메모장에 오늘 느낀 생각들을 써 내려간다.
나에겐 사진을 깊이 접할 기회가 없었다. 아닌가, 돌이켜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았으나, 그걸 업으로 여겨 깊이 탐구하고 고찰하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늘 사진에 대한 나의 깊은 생각들을 타인에게 공유하면, 나의 생각들은 그저 나의 취미, 또는 행위에 극한 되는 주제 1일뿐이었다. 나는 그것에 회의감을 느껴 함께 사진을 찍는 수아언니 외, 가까운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사진을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수강생은 다양했다. 60년대생부터 00년대생까지 있었다. 아마 내가 수강생 중 최연소가 아닐까 감히 의심해 본다. 나는 뮤지엄한미를 <인사이드 아웃> 개관 전으로부터 알게 됐다. 그 뒤로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꾸준히 소식을 접했고, 정규 아카데미 수강생을 모집한다길래 신청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강실에 들어갔고 자리에 놓인 작성을 해야 한다는 설문지를 보며 어떻게 답을 써 내려가야 할지 고민이 되어 머뭇거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강생분들 앞에서 나를 소개했고, 소개를 마친 다음 작가님께서 내게 Photo work반의 반장을 할 생각이 없는지 선뜻 제안을 하셨고, 얼떨결에 ‘제가 반장 할게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단 한 번도 반장이나 과대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생애 첫 수강하는 포토 아카데미에서 반장이 되었다.
각자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어떤 60대의 중년 남성분께서는 정년퇴직을 하시고, 자식들도 전부 시집장가를 보내고 난 뒤에 이제 앞으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배우기 위해 사진을 선택했다고 하셨다. 또 다른 어떤 92년생의 남자분은 안과에서 재직 중이신데, 이미 눈과 접촉하는 기계를 다루고 있고, 이전에 다른 아카데미를 수강한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이미 상업촬영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셨으며, 작가 어시스턴트를 하거나 갤러리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다. 설문지에 쓰인 나의 이름을 얼핏 보고 ‘외자인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예요?‘ ’ 전공은 뭐예요? 전공에 사진을 배워야 해요?‘ ’ 학교는 어디예요?‘ 하며 나를 꾸준히 궁금해하시던 나의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여성분께서는 이미 이 아카데미에서 1년의 수강을 마치고 초급반에서 내가 듣는 중급반으로 넘어오신 분이었다. 고전명화처럼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분이셨다.
오티를 들으며 사진 관련 도서와 전시 그리고 간단한 메커니즘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여태 나는 거짓사진을 찍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나는 기술적으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나의 사진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그게 스스로가 사진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이 되었다. 그러나 꿈과 미래를 생각하면 막상 그런 자신감들이 사실 오만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일쑤였다. 뛰어난 사람들은 이미 지상천하에 수없이 존재하는데, 전문성 하나 없이 사적인 이야기만 두둑하게 갖고 있는 내가, 여기서 사진을 더 깊이 배워 업으로 삼을 만한 자질이 있는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으며, 현실적으로 내가 사진으로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뭘 할 수 있을지. 돈을 벌고 싶다기엔 아직까지 사진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필요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직까지의 나는 자기표현과 자아탐구를 중시한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매체 중에서 ‘사진'이어야만 했을까.
오랫동안 꾸준히 사유하며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전부 다 내가 나를 찾아가기 위한 재료가 된다. 이것들이 전부 다 나의 자기표현 방식이려나. 그렇지만 사진은 글처럼, 여행처럼, 사유처럼 단순한 나의 표현방식이라고 하기엔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와 나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은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느껴진다.
언니의 말을 빌려보자면, 어떤 것들에도 사실 이유는 부여할 수 있다지만 사진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은연중으로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지난 오늘 오전에 엄마랑 식탁에 마주 앉아 아침을 먹었다.
‘네가 배운 게 하나 없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어. 너는 하나도 배운 게 없기에 가장 순수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인 거야.
먼 훗날 시간 지나고 나면 네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지. 엄마가 20대에 스키를 미치도록 좋아했지만, 50대가 된 지금은 여기저기 아픈 몸이랑 디스크 때문에 스키는커녕 단순히 스포츠를 취미로 즐길 생각도 못하는 것처럼.
결론적으로 지금 이 순간 네가 좋다고 의미 내리는 것들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건 좋은 거야. 지금 네가 좋아하는 걸 해.’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직도 나는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의 가슴 속에는 수만, 수천 겹의 봉우리를 가진 열꽃이 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온몸으로 직면하면 된다. 애도 후에 그 방랑을 여행 삼아 이 사람 저 사람 곁에 머물러도 보고, 무너질 걸 알지만 다시 속는 셈치고 모래성을 쌓아도 본다. 사랑은 가장 멋진 누군가를 찾아 정착하는 것이 아닌, 가장 나다운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일부를 찾는 여정이기에.
상실의 고통에 대해 미리 겁먹을 필요 없다. 이별이 초래할 온갖 불면과 슬픔, 그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잊고 다시금 누군가를 만나게 할 사랑의 강렬함은 마치 기적 같다.
봄이다. 당신의 여행을 시작할 시간. 사랑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자.
-레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