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보내며
글을 업로드하는 시점에는 이미 4월이 되었으나, 그래도 3월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끄적인다. 낮에 에스프레소를 마셔서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카페에 가고, 커피 마시는 것을 즐기지만 이따금씩 정말 커피가 심하게 몸에 받지 않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3월을 정리하고, 4월을 맞이하라는 뜻인가 보다.
4월에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있고, 내가 태어난 날이 있고, 중간고사가 있고, 벚꽃이 피고 지며, 잎이 무성해지고 세상이 온갖 초록으로 물든다. 4월을 기점으로 한 해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4월은 나만의 새 해다.
이번 달에는 정말 많은 인사이트를 쌓았다. 몇 개월동안, 내가 삶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나날을 꾸준히 보낸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봤는데, 결론적으로 없었던 것 같다. 늘 조급함과 괴로움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냈고,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늘 옥죄었으니. 수강신청을 잘하고 꽤나 여유로운 시간표를 짜게 되었고, 학교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 집중을 하는 게 아니라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경험하며 꾸준히 생각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지내는 요즘이다. 마음이 너무나도 풍요로우면서, 한 편으로는 이 여유로움에 너무 안주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있다. 즐거우면서도 편히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인 듯하다.
정말 많은 것들이 변화했음을 느낀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과 중심을 이루고 있는 나 조차도 변해가고 있는 지금, 나는 앞으로 어디서 존립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는 요즘이다.
1.
태어난 후로 가장 열정적이게 어느 대상에게 사랑을 준 적이 있었나를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미성숙했던 시절의 우정이었으려나. 그것을 당신을 위한 일이라고 자부했던 지난날의 내가 대상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헤아리기엔 어리석었다.
미성숙했던 어린 시절. 상처 주고 상처받았던 그 기억과 경험들을 기반으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훈련을 하고 어른이 되지만, 그 상흔은 지워지지 않고 흔적으로 오래 남아있다.
어떤 방식이 과연 옳고 건강한 형태의 사랑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2.
지난 3월 30일, 서울대에서 하는 안도 다다오 선생님의 <꿈을 걸고 달려라>에 다녀왔다. 안도 다다오가 설명하는 자신의 건축물들이 어떤 식으로 설계를 했는지 비전공자인 나는 정확하게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고, 그분의 감히 삶을 이루어 짐작할 수는 없다. 안도는 올 해로 82세이며, 현재 담낭, 담관, 십이지장, 췌장, 비장을 적출한 상태라고 하셨다.
그분의 생김새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정말 먼 거리에서 형태로 희미하게 지켜봤지만, 그 한 시간이라는 짧은 순간동안 같은 공간에서 존재하며 느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구였다.
그분이 오사카에 위치한 주택을 개조하기 위해 반으로 자르고, 그게 무너져 내렸지만 다시 세워 멋진 결과를 만든 것처럼 ‘인생에 있어 좌절하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어떤 자기 개발서에서도 무너지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이런 식의 공통된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 저자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아니, 확신이 아니라,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굳센 태도로 살아가며 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그분은 어느새 여든이 되었고, 어느새 안도 다다오가 되었으며, 삶의 농도가 너무나도 짙으신 분이라서 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불완전하고 미성숙한데, 안도 다다오에게도 이런 시기가 당연히 있었겠지.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지금 내 앞에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이런 순간이 이런 생각들이 있겠지 하고. 꾸준히 나의 신념을 지키고 현재를 묵묵히, 찬란히 살아가면 어느 순간 세상이 내게 응답을 하지 않을까 하고.
종종 노인이 되었을 때 내가 세상에 어떤 것들을 담겼을지를 감히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되어있을지.
꿈같은 한 시간이었다.
3.
이전에 독서모임 때문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적이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 초반에 주인공 소년인 홀든을 비롯하여 그의 주변 등장인물들의 외양묘사까지 그의 시점으로 정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주요 인물들로 느껴졌고 나는 그들을 외워야 하나 싶어 인물 관계도를 그리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저 외양묘사만 한 게 아니라 몇십 페이지를 주변 등장인물들에 대한 얘기로 빼곡히 채우길래, 나는 그들이 홀든의 삶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그들의 비중은 줄어들었고 이내 그들의 이름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삶에서 큰 지분이 있다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시간 지나면 잔향이 은은하게 남아버리는 시향지처럼. 향수를 뿌리고 몇 시간이 지난 손목 안처럼. 내 취향이 아닌 향수 냄새를 맡으면 당시는 코 끝이 아프지만, 잔향은 사실 은은하게 맡기 괜찮으니까. 관계도, 사물도,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시간 지나고 나서 떠올려보면 꽤 괜찮지 않았나 미화되기도 하고 무뎌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게 삶을 살면 꽤나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4.
<플라톤의 동굴에서>의 인류는 여전히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이미지에 빠져 흥청대는 해묵은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미지의 등장으로 만족할 줄 모르고 촬영을 해대는 사진의 눈으로 인 해 우리가 갇혀있는 동굴에는 이제 이미지가 훨씬 더 많아졌으며, 이는 사진이 '현실을 담고 있는 이미지'라서 '진리의 이미지'라는 착각을 한층 더 강하게 일으키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성격도 있으나 사진도 회화나 드로잉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이 현실인지, 이미지인지 꾸준히 의심해야 한다.
우리 시대가 실재하는 사물보다 이미지를 더 좋아하는 것은 실재하는 것의 개념이 점차 복잡해지고 약해진 탓이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사진촬영이다. 사진은 다루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현실을 감금하고 정지시켜 소유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세계를 이미지의 형태로 소유하는 것은 실재하는 것의 비현실성과 동떨어져 있음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세계를 복제한 또 하나의 세계, 그러니까 자연시력이 지각한 현실보다 훨씬 좁지만 훨씬 극적인 제2의 현실을 창출한다는 점이 바로 사진의 초현실성이다.
사진은 애달픈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는 사진에 찍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비애감을 띠게 된다. 추하거나 기괴한 피사체조차도 사진가의 눈길이 닿으면 위엄이 더해지기 때문에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아름다운 피사체라면 이제 늙어버렸다거나 상했다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처로운 감정을 자아내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죽음, 약점, 변질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진은 바로 그런 순간을 도려내 동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녹여버리며 흘러가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
5.
언니랑 이런저런 근황을 나눴다. 시간적 여유로움도 분명 무시할 수 없으나, 분명 작년의 나와는 다른 게 느껴진다.
작년 내내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조급함이 어느새 사라졌다고 할까. 방학 동안 나의 세계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이전에 스스로를 괴롭히던 것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어느새 나는 그 시절의 감정에서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본 대상에는 내가 그렇게 미워할 이유가 없을 만큼 대상에게도 존재의 이유가 있었고, 나와 같이 대상에게도 그 만의 세계가 있었으며, 그의 곁을 지켜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부끄러웠던 감정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렸다.
6.
수요일은 어느새 나의 인사이트를 쌓는 날이 됐다. 청계천을 따라 쭉 걷다가 건물 외부와 내부가 현저히 다른 광화문의 D타워가 궁금해서 들어가 보고, 문득 생각난 교보문고의 향이 그리워 그곳에 가 책을 읽는다. 다채로운 삶을 그려가고 있는 요즘이다.
예년보다 벚꽃이 일찍 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챙겨서 꽃을 보러 다니는 편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거리에 피어난 벚꽃들을 보며 올해 봄을 잘 만끽하고 있다.
포토 아카데미에서 고속 셔터스피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고속 셔터스피드를 이용해 포착하여 순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그걸 배우면서 느낀 점은 우리의 일상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시시콜콜한 대화도, 진지하고 깊은 고민을 나누는 시간들도. 서로를 향해 건네는 악수와 안부를 묻는 시간까지. 정말 잠깐 왔다 가는 봄을 위해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일 년간의 기다림도. 흩날리는 벚꽃도, 흐드러진 일몰도 부디 오랫동안 보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을 끊어야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듯이
관계지평은 엮음으로써 열리는 게 아니라 끊음으로써 열린다.
누구와 결별할 것인가?
무엇과 결별할 것인가?
그 잣대를 바로 세울 때, 새로운 관계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