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놓은 현관문에서 복도를 걸어오는 지팡이 소리가 들리면 1시가 된 것이다. 양손마비인 뮤즈에게는 4년 동안 월수목 같은 시간에 노노케어 방문단이 오신다. 2인 1조로 87살의 소피아와 81살의 돌로로사는 각자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성격도 완전 다른데 단짝이다. 지난 겨울 소피아는 집에서 넘어지셔서 한동안 노노케어를 나오지 못했었다. 우린 말은 안 했지만, 여든 일곱이나 된 소피아님 얼굴은 이제 다시는 뵙지 못하리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듬더듬 지팡이를 짚고서 봄에 돌아오셨다. 반가웠다. 지난주 양손마비 뮤즈에게 제일 연장자인 소피아가 말씀하셨다.
다음 주가 우리들 방문하는 마지막 주에요. 2019년 방문 마지막. 1월까지 쉬고 내년 2월에 뵐게요.
뮤즈가 알고 있다는 듯 끄덕이신다. 그들의 나이는 무려 16년 차이지만 레지나는 연하의 뮤즈에게 깍듯이 존대를 하신다.
그때 젊어서 아픈 남편 대신 때밀이로 아이들을 키우신 돌로로사가 덧붙이신다.
요양보호사인 내 얼굴이 왜요 하는 표정이었으므로.
으응. 11월부터 1월까지 춥고 길가다가 넘어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딸과 함께 사는 돌로로사는 카톡으로 재미있는 정보를 보내주시는데 딸과 비슷한 또래의 날 만날 때마다 아껴주신다.
내 딸도 저렇게 다정했으면 좋겠어. 양손이 마비인 뮤즈의 식사를 준비해 드리고 씻겨드리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게 돕는 것이 내 일인데 말이다.
남의 어머니 돌보는 일을 독립운동처럼 해서 정작 엄마에게는 소홀한 나이기에 그냥 웃기만 한다.
그건 그렇고 방 안에서 내년에 만나자는 인사를 10월에 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아쉬운 내가 제안을 한다.
제가 갑자기 급한 일이라고 해서 번역을 해주었는데(청구서는 보냈으나 말일 결재다. 일단 쓰고 보는 주의) 예상하지 못 한 돈이 들어왔으니 사요나라 파티를 해드릴게요. 짜장면이랑 탕수육으로.
그러자 가장 연장자인 소피아가 당신이 만 원을 내시겠단다. 우린 그럼 그 돈은 내년에 무사히 겨울을 나고 돌아와서 신년회를 할 때 쓰자고 결론을 내렸다. 소식을 하시는 어른들께 찹쌀 탕수육 소자와 짜장 곱빼기 둘을 시켜서 나누어 드리자 한상이 차려진다. 헤어질 때 무릎을 못 구부려서, 연골이 다 닳아서 털썩 주저앉아야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는 돌로로사의 신발을 돌려드린다. 작별인사를 하고 또 하던 호호 할머니 소피아의 마지막 인사는.. 우리 손녀딸 결혼식이 마포에서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밥만 먹고 갈래요? 우린 친척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누가 와준다기만 해도 좋아요.
나는 손자랑 함께 가서 먹고 오겠다고, 그렇게 하자고 손을 잡는다. 멀어지는 두 노인을 뒤로하고 뮤즈와 내가 안으로 들어서는데 돌로로사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