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금요일 오후. 나는 우산과 가방을 챙겨 외출을 한다. 단관 개봉을 하고 있는 토니 타키타니를 보기 위해서.
검정 스웨터에 겨자색 스커트를 입고 검은 부츠의 지퍼를 올리자 외출 준비는 끝이 났다. 나는 비오는 날 혼자서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런 날은 극장 좌석이 늘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컴컴한 극장이 텅 비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재즈 뮤지션이었던 타키타니가 미국인 소령의 퍼스트 네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토니로 지어주었다. 앞으로 미국의 영향이 계속 될 것이니까 미국식 이름을 지어줘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토니 타키타니.
영화는 토니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자신을 나은 지 3일 만에 엄마가 죽은 토니는 순회공연으로 늘 부재중인 아버지와 둘이 산다.
'언제나 혼자였던 토니는'
"혼자 있는 게 특별히 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레이션과 배우의 대사가 책을 읽듯이 계속된다.
중학교에 들어 간 토니는 혼자 문을 잠그고, 혼자 잠이 들었다. 특별히 외롭진 않았다고 토니는 말한다. 대학에 들어 간 토니는 미술을 전공한다. 그림에 열중하는 토니 곁에서 친구들의 토론이 가끔씩 들려온다. <넌 자본주의의 개가 되어도 좋아> 라고.
토니는 생각한다. '예술성과 이데올로기를 담은 작품은 비논리적이고 미성숙한 것일 뿐'이다 라고.
그런 어느날 에이코가 토니의 일러스트 시안을 가지러 온다. 토니는 문틈으로 그녀를 지켜보다가 문을 활짝 열고 인사를 한다.
토니는 그녀를 점심에 초대한다. 그녀는 첫데이트를 하면서 그에게 말한다.
"옷이라는 건 저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뭐랄까, 저는 굉장히 사치스러워서... 월급의 대부분을 옷에 써버려요."
"나는 미술 도구 이외에는 아무 곳에도 돈을 쓰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토니.
다섯 번째 데이트에서 토니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2년에 한 번 정도 아버지를 만나는 토니는 여자 이야기를 한다.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처음으로 결혼에 대해 생각했어. 그녀는 마치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여자 같아."
15살이나 차이가 나는 에이코는 토니와 결혼을 한다. 슈퍼에서 양배추를 고르고 있는 토니. 토니의 배경에는 사과가 높이 쌓여 있다. 높이 쌓여 있던 사과는 순간 우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탁자 위에 두부와 캔 맥주가 있다. 토니는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화면에는 토니가 따른 맥주와 두부, 두부 옆에 간장병이 나란히 놓여 있다.
토니는 생각한다. 고독은 감옥 같다고...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독했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그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사람이 그녀였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녀가 있었다. 고독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언덕을 달려오는 토니, 그리고 팔래줄에서 팔랑거리는 빨래들 사이로 미소짓는 그녀가 있었다. 그런 일상이 결혼 후 3개월 동안 계속 되었다.
낮에 사온 선인장 화분을 뒤로 하고 부부가 편안하게 tv를 보며 저녁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한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옷을 사들였다. 구두, 구두, 구두... 아름다운 옷 앞에서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에이코.
그는 에이코를 위해 거대한 옷장을, 구두 수납장을 특별 주문해야했다.
옷장 앞에 서서 옷냄새를 맡는 토니.
토니는 에이코와 함께 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러 빠에 간다. 언제나 같은 곡을 연주하는 아버지 소자부로. 그런 아버지의 연주가 오늘은 왠지 조금 다르다. 그러나 왜 아버지의 연주가 달랐는지 토니는 묻지 않는다. 왤까.
토니는 에이코에게 옷사는 걸 줄이면 어떨까 라고 제안을 한다. 그녀는 마치 중독처럼 옷을 사들이는 자신을 어쩔 수가 없으나 고쳐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순간 화면 전체가 검은 배경의 유리 파편으로 가득찬다.
일주일 후, 에이코는 자신의 옷을 반품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는다.
토니는 까다로운 조건의 신문 광고를 낸다.
165cm의 키에 발 치수는 230mm 등 아내의 옷치수와 맞는 여성을 채용한 토니는 지시사항을 말한다. 작업한 일러스트를 사무실에 가져다 주거나, 의뢰 받은 서류를 받아 오는 일을 할 때 제복처럼 아내의 옷을 입어달라고 한다. 다음 달이면 실업 급여가 끊길 위기에 있는 히사코는 이해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토니는 말한다. 아내가 없다는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렇게 해달라고.
아내의 옷방을 안내받은 히사코는 '이렇게 멋진 옷을 남기고 죽은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까'라고 중얼거린다. 아름다운 옷과 구두를 만져보고 입어보던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옷방에 주저앉아 흐느껴 우는 그녀의 모습이 허전하고, 허무하고, 쓸쓸하다. 히사코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토니는 옷방에 들어온다. 히사코는 울면서 말한다.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은 예쁜 옷들을 한꺼번에 보는 건 처음이라서... 혼란스러워졌어요. 죄송합니다."
일주일 간의 제복이 될 아내의 옷을 고른 히사코가 돌아가자 그는 그녀의 음성전화기에 메시지를 남긴다. "모든 걸 잊어주세요.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옷들을 처분한 방이 텅비자 토니는 그 방안에 누워본다. 나레이션은 계속된다.
'한때 가졌던 감정도 그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기억은 바람 속의 안개처럼 천천히 변했다.'라고.
아내가 사라진 후 2년이 지나자 아버지 마저 간암으로 죽는다. 이제 아내의 옷방은 아버지의 재즈레코드판과 낡은 트럼본이 차지했다.
토니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 하는 데 일 년이 걸렸다. 편지와 그밖의 것들을 불태우다가 토니는 불타고 있는 봉투 한장을 황급히 집어든다.
빈 방에 누운 토니의 뒷모습 위로 전쟁이 끝나고 감옥 살이를 했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버랩된다.
불타고 있던 봉투 안에 든 사진 한 장. 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는 토니. 자신의 집 앞에서 끊임없이 전화 벨이 울리자 서둘러 문을 열쇠로 열고 있는 그녀.
마침내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고 마는 토니.
영화는 끝이 나고, 검정 롱부츠에 겨자색 스커트를 입은 나의 눈은 초점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