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요양보호사입니다
내가 기차방이라고 불렀던 곳이 있던 염리동에 엄마를 모시고 다녀왔다. 엄마의 단골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기차방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나는 열 권의 책을 번역했는데 한번은 엄마가 암수술을 받는 동안 보증금을 다 까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살만 했던 건 내가 부재중이면 출판사에서 오는 택배는 다 받아주시던 원일세탁소 아저씨와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름에 빠진 이모를 위해 데리고 온 유기견이었던 엘리스의 자궁암 수술을 해주시고 매일 개의 안부 전화를 걸어주시던 동물병원 할아버지와 엄마가 돈 못 버는 딸 자랑이 하고 싶어서 들고 간 번역서를 병원 진료비 대신 받아주었던 최내과 원장님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엄마가 최내과 원장님께 책 세일을 시작하시자 간호사도 웃고 원장님도 웃고.. 결국 원장님의 손엔 간호사가 적어 준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책제목 쪽지가 들려있고 우리 엄마는 당뇨 체크 300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시며 독감예방 주사를 맞고 나오셨다.
낮에 한국요양보호사교육원에 책을 전달하러 갈 때도 동행하시더니 당신은 이제 딸의 껌딱지가 되어 마을을 순회하신 후 피로하신지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버스 안에서는 통 말이 없으시다.
흠 나는 아직 2회전이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태권도에서 돌아 올 손자와의 저녁시간 분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