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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K문학

하루키=미도리

by 이은주


'무라카미 대 무라카미'라는 특집 때문에 문학잡지를 산 적이 있다.
두 명의 무라카미 열풍은 도쿄에서도 호야 기숙사에서도 대학 도서관 지하 자료실 문학잡지 과월호에서도 엄청났다.
나는 무라카미 류의 절판된 도서, 아니 잠시 금서가 되기 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를 종로서적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처음 만났다. 질투가 났다. 광고 카피보다 더 강렬한 느낌의 타이틀에 오래오래 마음을 빼앗겼다. 다음은 호야의 기숙사에서 한해 일찍 유학 온 친구가, 이십여 년 전 일본 대학에서 중국학 전공을 하게 될 친구가 '노르웨이의 숲'을 열정적으로 소개하여 읽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하루키 열풍에 한국문학이 전염된 수준 정도가 너무 심각하여 다 읽고 바로 친구에게 넘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하루키와의 만남은..
나는 곧 그를 잊을 줄 알았고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었다. 내가 30년 가까이 그의 '노르웨이의 숲'을 일곱 번 사게 될 줄은. 읽고 버리고 읽고 버리기를 반복하게 될 줄을.. 신경이 쓰이는 작가이며 내게 영향력을 갖게 할 작가라는 것을 말이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하루키는 어느 인물을 가장 애정 했을까. 그는 자신을 주인공에 감정 이입해서 이야기를 끌고 갔을까? 아니면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을까. 뭐 이런 대단한 것들을 생각하기 위해 일곱 번이나 같은 책을 사지는 않았다.
단지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의 대학 친구 미도리에 주목했을 뿐이다.
미도리라는 인물이 '노르웨이의 숲' 주인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속옷을 살 돈으로 주방도구를 사느라 하나뿐인 브래지어를 말려서 다시 입는 그녀. 일본어로 미도리는 초록색을 가리킨다. 나는 왜 사람들이 하루키를 주목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초록을 꿈꾸고, 새싹을 노래하는 작가임을 알아본 것이다. 그 후 나는 미도리의 삶을 흉내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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