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부탁합니다

by 이은주

1.
대화하다 보니 우린 서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여든일곱의 뮤즈를 어떻게 하는 게 진짜 도와드리는건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여든일곱 뮤즈의 장기등급신청은 올해 초 반려되었으나 나는 다시 한 번 신청을 도모한다.
등급 외자로 지금 받고 있는 바우처가 12월 말 서비스가 종료되면 맞춤사업으로 새로운 선생님께서 주 2회 오신다고는하나 뮤즈의 집 문은 굳게 닫혀있어서 동사무소 담당자도 뮤즈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우선 신경정신과에서 치매검사를 먼저 받았다. 검사 결과 후 소견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요약되어 있었다.
상기환자는 상기 진단 하에 본원 치료 중이신 분입니다. 환자 분은 본인의 증상을 부인하시나 본원 검사 및 진찰, 보호자 관찰 기록 등을 미루어 상기의 진단이 의심되는 상태입니다. 현 상태로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예상되어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또한 질병의 자연 경과상 악화 우려가 커 향후 면밀한 자료적 관찰이 요구됩니다.-이하 여백-

2.
장기요양인정조사로 방문한 선생님은 뮤즈와 상담 후 앞으로 진행될 과정을 가족대신 요양보호사인 나에게 설명을 해주신다. 화요일이니까 앞으로 목요일쯤 가 종류와 나 종류의 의사소견서 중에서 어떤 것을 제출할 지 연락을 주면 기존에 다니던 신경정신과에서 장기요양보험 홈피에 직접 기록을 남겨주시거나 의사소견서를 발급해주면 관리공단으로 등기 발송까지가 우리의 할일이란다.

3.
업무상 일을 마치고도 장기요양인정조사 담당자는 발길이 안 떨어지는 듯 했다.
얇고 쌍거풀 없는 커다란 두 눈을 껌벅이며 이럴 때 자신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신다.


'두 아드님의 상태를 봐서는 여든일곱의 뮤즈를 돌볼 사람이 정기적으로 오는 게 맞는데 요양등급이 4등급이 아닌 5등급이 나와버리면 치매쪽은 인지 서비스가 주가 되버리기 때문이에요.. 어르신 같은 경우엔 가사일과 식사를 도와드려야하거든요. 그리고 배변을 못해서 119를 부르셨고 대장내시경을 하셨다는데 이런 경우도 자주 봤어요. 물론 드시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변비로 또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으면 그랬을까.. 근데 현관문은 왜 열어놓으셨지요?'

이번엔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나는 앞치마자락을 만지작거리다 대답한다.

'사실 제가 처음 왔을 때 집안에 악취가 대단했어요. 죄송하게도 청소를 하면서 두 번 구토를 참을 수 없었지요. 이 집에서 사시는 분들께는 죄송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일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좀 두렵기도 했어요. 남자 둘에 어르신 한 분. 사각팬티 바람으로 다니시기도 하고 요리를 할 때 칼도 매번 감춰져 있기도 해서 여쭈어보면 북한군이 쳐들어올까봐 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하고..
돌봄을 마치고 가서도 우울했어요. 우울해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4.
그러자 장기요양인정조사 담당자는 저도요.. 저도 너무 힘들 때가 있어요. 동료 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는 사람도 있어요..

여든아홉의 뮤즈 돌봄을 마치고 간 날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댔다. 뭔지 모를 덩어리가 가슴을 눌러서 저녁을 준비하다가도 수돗물을 틀어놓은 채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돌봄 영역에 포함되어야 할지 경계가 무너졌다. 집에 와서도 뮤즈의 겨울이 걱정되었고 뮤즈가 쓰러져서 입원이라도 하면 배가 고프면 막걸리를 마시는 두 아들이 임대아파트에서 관리비를 밀리지 않고 살아낼 지도 걱정이었다.
그런 내용을 구구절절 꺼내지 않아도 담당자와 나는 서로를 벅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서로 자신의 엄마가 아닌 뮤즈에 대해서 잘 부탁한다고, 아니라고 지금까지 잘 해오셔서 오히려 이쪽이 고맙고 잘 부탁한다며 절을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