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겨울, 여덟번째 감독 회고전으로 하이퍼텍 나다는 장 뤽 고다르를 준비하고 있었다.
점프컷, 카메라를 보고 말하기 등 스타일의 파격으로 기존 영화들에 반기를 들고 화려하게 데뷔한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Breathless-1960)'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범죄의식 없이 물건을 훔치는 한량 미셀로 분한 장 폴 벨몽도가 차를 몰면서 카메라를 향해 지껄이는 모습이라든지, 인터뷰어가 "인생 최대의 꿈이 뭐죠"라고 묻자 카메라를 향해 "죽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도전적인 씬은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인화되어 있다.
빌리지 보이에 수록된 기사에 의하면
고다르는,
조이스, 스트라빈스키, 엘리어트, 그리고 피카소가 각자의 분야에서 이룬 업적을 영화에서 이뤘다.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낸 장본인들로,
그들이 나타난 이후에 인간의 표현양식들은 결코 이전과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고다르의 유산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 가운데, 마틴 스콜세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구스 반 산트, 스파이크 리, 라스 폰 트리에, 레오 카락스, 짐 자무쉬, 라울 루이즈, 모흐센 마흐말바프, 리차드 링클레이터, 카트린느 브레이야, 그리고 왕가위 등의 감독들은 모두 고다르에게 결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입장에서 악전고투한다는 것은 자신의 작업의 본체와 맞닥뜨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고다르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업하면서 그 문화적 반란을 멈추어본 일이 없는 개인적인 미학적 혁명가이다. (중략)
고다르 영화를 17번이나 촬영했던 라울 쿠다르에 의하면 그는 커다란 메모장에 대사를 휘갈겨 쓰고 배우에게 지시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고 한다.
때로는 "나는 폭로해야 해. 막스-레닌주의자인 내가 더 이상 자본가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어" 라는 극단적인 선언을 하기도 한 고다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고다르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감상한다는 것은 내겐 아주 멋진 체험이었다.
작가주의 영화란 무엇인가.
앙뜨완느 코폴라가 쓴 '낭만주의자 트뤼포'에 그 답을 구해본다.
-작가들의 경향을 언급할 때, 사람들은 간혹 작가주의 영화가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자아 발견과 그의 개성의 ㅣ표현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넘어가곤 한다. 작가주의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는 고다르, 기 드보르를 꼽을 수 있지만, 트뤼포 역시 그와 같은 경향을 지닌 대표적인 감독이라 할 수 있다. 트뤼포는 그가 제작한 자전적인 영화를 통해서나, 또는 그 당시의 정치, 사회생활 속에서 분명한 입장표명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했다.
트뤼포의 영화속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감각적인 열정으로 인해 소진해버린 한 낭만주의자를 본다. 앞 세대에 대해 신뢰가 무너져버린 젊은이들을 헛되이 합류시키려한 전후 현대화주의자 속에서 트뤼포는 '야생의 아이'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가족의 의미에 이의를 제기하던 시대에 부모님과 관계도 좋지 않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트뤼포는 14살에 생계를 위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감성적이긴 했으나 사회에 적응 불가능했던 그는 50년대 불량 청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청소년 보호소에 수용되기도 했다. 반항적인 젊음은 자기만의 문화를 고집하게 되었다. 콜린 윌슨이 말한 홀대받은 미국의 록, 째즈와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 사이에서 영화동호인 모임과 영화를 통해 트뤼포는 그의 개인주의적인 감성으로 볼 때 아무 의미없는 가식적인 현대사회에서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하게 된다.
도발적으로 군에 입대하고 탈영하여 수감자가 되기도 했던 그. 영화를 통해 이러한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정열적인 트뤼포를 이상주의자이며, 도덕주의자인 앙드레바쟁이 발견하게 되고, 그후 트뤼포는 그와 함께 기사를 쓰기도 하고 영화애호라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 창조에 가담하게 된다. 트뤼포는 야생적인 젊음을 앙뜨완느 드와넬이라는 인물을 통해 표현하는데 그의 영화 속에서 앙뜨완느는 문학적이고 영화 애호가적인 인용구를 통해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 트뤼포 영화속에서는 모든 것이 그 자신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현실적인 삶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 속에서 그의 유년시절, 그의 사랑, 그의 영화에 대한 집념 등을 얘기하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신세대의 대변인 역할을 담당했다. 아방가르드의 공격적인 정열을 품고 있던 트뤼포는 재능이 없으면서 도덕적, 정치적으로 위선적인 영화인들(말하자면 진부한 영화를 나름대로 비평한다고 자처하는 구태의연한 영화인들을 지칭 하는데)에게 일격을 가하는데, 이는 1945년의 유명한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발표문에서 잘 보여주고 잇다고 하겠다. 트뤼포는 영화비평에 있어서 랭보가 되길 바랬다. 그래서 랭보가 "나는 절대로 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트뤼포는 "나는 그런 건 싫어 할 것이다(역자주: 나는 그런 진부한 영화들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란 의미임)"를 그의 초기 비평서적의 주제로 삼았다.
1960년 트뤼포는 샤르트르, 기 드보르, 브르통과 같은 예술인, 지식인과 더불어 121인 선언에 참여했다. 알제리 전쟁 중 이 선언문은 식민지 전쟁에 반대하도록 호소했는데 서명자 중 대부분은 심문을 당하거나 감금되었으며, 그들의 작품은 곧 영화상영이든 출판물 간행이든 다 금지 되었다.
그후 누벨바그는 고다르와 마찬가지로 트뤼포로 하여금 거짓 반항적이며 결국은 보수적인 생각의 젊은이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하지만 1968년 트뤼포는 두 번에 걸쳐 그의 젊은 시절의 열정을 다시 되찾게 된다.
한번은 모든 영화애호가들의 아버지이며 전설적인 프랑스 시네마테끄의 관장이었던 앙리 랑글루와를 좌천시키려는 앙드레 말로 장관에 대항하여 앙리 랑글로와 변호인단을 이끌었다. 두 번째는 방송매체의 화려함이나 안이한 생활에 빠져 무뎌있던 영화인들의 정치의식이 눈뜨게 되자 68년 5월을 준비하는데, 이로 인해 트뤼포는 또 한번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총 파업 때 고다르는 격분한 학생,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깐느 영화제를 중단하도록 호소하였고 트뤼포는 요란한 영화제의 사치와 영화 산업에 끼어 든 유산계급을 공개적으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느뤼포의 공정하고 솔직한 이상주의는 고다르와 달리, 그가 한번도 영화산업에 무관심한 적이 없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즉 트뤼포는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최근에 트뤼포의 영화와 비평서 및 그의 입장들에 대해 재검토가 이뤄짐으로써, 영화인으로서의 트뤼포를 정형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밝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 속에는 '인간'과 '나'의 보편성과 "내일의 영화는 담대한 자들에 의해 만들어 질 것이다"라고 영화인들을 독려하는 트뤼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앙뜨완느 코폴라의 글을 미친듯이 타이핑하는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 영화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도 고다르와 트뤼포의 이야기를. 누벨바그며 작가주의 영화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고다르의 영화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는지,
트뤼포의 영화가 내게 어떤 감흥을 주었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현학적으로 누구누구의 글을 옮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물이 든 것이다. 내 친구 복이가 말한 물.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데도 누구의 이야기를 빌어와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물이 들어있다. 경직되어 있는 사고로 존재한다.
나의 직업은 책을 만드는 것인데, 나는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책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수십권의 책을 내 손으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한번도. 정녕 한번도 마음에 드는 책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불만족 상태에서 누벨바그의 영화인들은 내게 잠에서 깨어나라고 외치고 있다.
한 번뿐이라도 좋으니 네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 번뿐이라도 좋으니 네가 정말 원하는 책을 만들라고.
이런 불끈하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 고다르와 트뤼포가 필요한 것이다.
내 욕망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다 보면 닭이 울고
어느새 나는 일터로 향하고 있겠지.
내게 물어보아라.
일탈을 꿈꾸는가고.
오! 이런...
이 세상에서 나만큼 아버지의 죽음을 꿈꾸고,
국가 전복을 꿈꾸고,
사랑을 꿈꾸고,
희생을 열망하는 자는 들어라.
고다르가 미치광이 삐에로에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노래하고,
마리아에게 경배를에서는 보들레르를 노래하지만,
결국 추상적인 너무나 추상적인 시와 그림과 독백을 형상화시킴으로써 자신을 언어화했다는 사실을.
자신을 언어화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2004/04/16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