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는 책 한 권

by 이은주


이노우에 선생님의 첫 한국어 수업을 위해 두 번째 프리스쿨을 방문했을 때는 처음의 축제 분위기는 간곳 없고 조용한 목조건물 아래 층에서 두어 명이 수학문제집 같은 것을 풀고 있었다.
2층으로 안내된 나는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습관처럼 책을 펼쳤다. 일본 문고판의 세로쓰기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꽃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이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사전으로 찾을 수 없을 땐 밑줄을 그었다가 나중에 찾아보고는 했는데 어떤 장은 조사만 남긴 채 다 찾아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나츠메 소세끼의 <마음>을 완독했을 때는 새벽이었는데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책읽기에 공이 들었기 때문이고 낯선 외국어의 감정선이 좋았다.
2층 나무계단을 올라 온 선생님은 익숙한 솜씨로 녹차를 찻잔에 따라주며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는지, w군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으셨다.
'녹차가 맛있네요. w군은 연극동아리에 가입해서 바쁜가봐요. 문예과 그룹별 수업이 같아서 수업 때 봐요.'
그때까지 w군과 나는 주 1회 그룹 수업 이외에는 같이 듣는 과목이 없었다. 만나도 데면데면 인사 정도만 하던 과친구가 어느 날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며 여행지 열쇠고리 하나를 선물했다. 그리고 자신의 선생님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데 한국어 자원봉사를 할 생각이 있는가 물었다.
나는 자신의 과거, 즉 자신이 교문 앞에만 가면 심장이 조이는 통증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로 대학에 왔다는 w의 솔직함에 거기가 어디인지, 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묻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좋아.' 승낙을 하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점심으로 학생식당에서 240엔 하는 카레를 먹으러 가기 위해서 일어섰지만 달리 더 할말도 없었다.
w군은 이노우에 선생님을 진심으로 따랐고 존경했고 놀라운 속도로 부진한 과목을 따라잡아서 프리스쿨에서는 학생들에게나 부모모임에서 기대주였다. 이노우에 선생님 또한 w군을 학생 이상으로(그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아끼셨다. w군이 공백기를 벗어나 대학에 잘 적응하는 것을 얼마나 바라고 계셨을지 선생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교재를 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소리내어 보고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발음되는지도 익혔다. 알파벳 케이(혹은 기역이)가 모음인 아야어여와 만나면 어떻게 발음이 되는지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동안 첫 번째 시간은 끝이났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서자 선생님은 서가로 나를 이끄셨다. w군에게 도스또예프스끼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예전에 읽던 것인데 지금은 필요없으니 가져가라고. 서가에 꽂혀있던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중에서 한 권을 꺼내주셨는데 그것은 <죄와 벌>이었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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