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선생님을 둘러싼 공동체에서는 도쿄에서 멀리 치바현에 있는 모토야와타까지 한글을 가르치러오는 나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하루는 프리스쿨에 종이오리기 수업이 개설되었다. 종이오리기는 나의 취미로 친구가 되고 싶거나 감사의 뜻으로 가끔 인형을 오려서 선물하는 놀이이다.
어느 날 한국어 수업 후 이노우에 선생님께도 종이를 오려주었을 것이다. 이노우에 선생님은 프리스쿨 안에서 필요한 수업은 그 분야의 전공 선생님들께 의뢰하여 학생들 수업을 보강하고 있었다.
내 종이오리기 수업도 그런 차원이 아니었을까? 공교롭게도 응모자는 딱 두 명. 선생님의 두 딸뿐이었다.
그날 그 작고 어린 소녀들이 한국의 유학생에게 종이오리기를 배우기 위해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앉아 있었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큰 아이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하얗고 투명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아빠의 작업실로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놀러와서 약간은 흥분되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여성이나 일본 여학생에 대한 이미지는 피천득의 <인연>에서 나오는 아사코로 대표되었는데 눈앞의 꼬마가 지금 막 피천득의 '인연' 속에서 걸어나온듯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나비를 오려보았다. 아이들도 그렇게 했다. 나비의 모형과 나비가 잘려나간 자리에 생긴 빈 공간으로서의 나비가 소녀들을 기쁘게 했다. 다음은 빨간머리 앤을 오려보았다. 한 손에는 가위를, 한 손에는 색종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가위질을 하는 내 손을 아이들은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자신들 차례가 되자 몹시 고심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접은 종이 위로 내가 오리고 난 종이 모형을 두고 본을 떠주자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종이오리기 강좌는 짧고 유쾌했다.
아빠가 오늘은 한국식 삼계탕을 준비했노라고 하자 모두 기뻐들했다.
선생님의 부인과 나 그리고 아이들은 한국의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삼계탕 준비되었어.' 부엌에서 소리가 나자 아이들은 달려가 상차리기를 돕기도 했다.
우리 앞에는 일본식 커다란 냄비에 생선과 닭이 같이 삶아져 나왔다. 다국적 삼계탕이었다. 아이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배가 고픈 듯이 자신들의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어른들은 삼계탕에 맥주를 나누었고 이노우에 선생님 부부는 이야기의 중심에 초대한 나를 두고자 함께 있는 시간내내 배려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