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선생님의 가을타기
-꽃, 정원, 아르바이트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쯤 상상도 못할 딜레마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을의 늦은 오후. 학생들이 돌아가고 난 빈집에서 두꺼운 안경을 쓴 이노우에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하고 2층 책상에 앉아계셨다.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시는 모습은 정말 처음이라 준비해간 한국어 4급 문제집과 읽기 자료를 꺼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날은 선생님의 내부에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뚝 끊어져버린 것 같았다. 당황했다. 그리고 침묵했다. 선생님이 한국어를 배울 기분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어쩌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문제였을 수도 있다. 지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따라오는 학생도 있고, 따라오지 않는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혹은 아이들에게 열정을 다 하면 할수록 선생님 본인의 꿈에 대한 열정이 새록새록 떠올랐을 수도 있었다. 곁에서 지켜본바로는 그는 모토야와타의 목조건물 2층을 지키기에는 그릇이 컸다. 자신의 에너지 3분의 1도 안 쓰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아니 그에게는 무언가 비밀스런 꿈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비슷한 세대의 사람으로 세기말적인 우울과 상실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나도 가을을 타고 있었다. 엄마의 가게는 점점 몰락해갔고 서울에서는 안 좋은 소식들뿐이었다. 졸업을 해도 취직이 잘 될지 확신도 없었다. 꿈만 믿고 선택해왔던 지난날의 내가 영 미덥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도 가기 싫었다. 학교 수업 후 5시간의 홀써빙은 정체성을 흐려놓기 일수였다. 매달 내는 방세와 생활비를 더는 엄마에게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번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나와 있는 자신이 바보같았다.
그런 우울한 나와 가을을 타는 선생님이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선생님은 미안해 했다. 자신이 공부할 기분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나는 교재를 덮고 노래를 한 곡 가르쳐드리기로 했다. '토요일 밤'은 따라부르기 좋은 노래다. 쉽고 다정한 멜로디를 나는 좋아했다.
'긴 머리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오~ 토요일 밤에. 토요일 밤, 토요일 밤에 나 그대를 만나리~ 토요일 밤 토요일 밤에 나 그대를 만나리라.'
선생님이 간신히 우울의 늪에서 걸어나오시도록 몇 번 더 '토요일 밤'을 함께 불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선생님의 책상을 장식한 화병에서 장미꽃 세 송이를 선물로 받아왔다. 선생님은 대학 때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꽃 이야기도 즐기셨다. 보라빛 장미 이름이 '마담 비올라'인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