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다양성에 압도당했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위축되거나 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반했다. 프리스쿨에서는 부모들의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다. 한국어 수업하는 날 부모모임도 잡혀있었는지, 부모모임을 하는 날 초대되어 갔었는지 정확치는 않지만, 어쨌든 난 긴 테이블에 모인 프리스쿨 재학생들 부모님과 한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노우에 선생님이 발간하는 프리스쿨 신문을 통해 프리스쿨의 교육철학이라든지, 아이들의 근황, 소규모의 동아리 모임 등이 공지되어 있었고, 부모모임 참가자들은 대부분 그 소식지를 읽고 있기에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일본에 마라톤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또는 마라톤 대회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 모르지만 이노우에 선생님의 주요 화제는 마라톤이었다. 자신의 하프 마라톤 기록이 몇 분인데 몇 분 단축하는 게 목표인지, 풀코스 마라톤을 뛰면서 그 다음 대회일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노우에 선생님 학생들 가운데 마라톤 대회에 나갈 것을 권유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도 응원을 하러 가거나 눈내리는 겨울 하프 코스를 달리며 ‘내가 대체 왜 달리고 있지?’ 하고 언덕길을 기어올라가며 후회했으니까.
그날 모임에서도 어김없이 마라톤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변했어요’와 같은 체험담 같은 것을 부모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노우에 선생님의 마라톤은 단순한 마라톤이 아니었다. 아이들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도전이었고, 좀처럼 움직이려하지 않는 친구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장치였으며 달리기를 끝낸 후의 성취감을 맛보게 함으로써 다음으로 목표를 정할 수 있게 등을 떠밀어주는 동력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라톤에 흥미없었지만, 자신이 따르는 선생님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마라톤 찬양을 하니까 마지못해 달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다가 보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몰랐다. 이노우에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발, 한발 걷다보면 언젠가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늦은 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속도가 있으니 그 속도를 꼭 지키면 된다는 메시지를 마라톤을 통해 전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꿈을 꿀 때 그 꿈이 현실 속에서 빛을 발휘하도록 함께 달려주는 어른이었다.
부모모임은 딱딱한 회의 형식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소규모의 모임처럼 나누어 먹을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 가운데 공유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내가 앉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이노우에 선생님의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점뿐이었다. 프리스쿨의 부모들과 섞여앉아서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내가 본 학생들 얼굴을 그 부모님들 얼굴에서 찾아보고는 했다. 선이 가냘프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다츠오 군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성이 있었다. 다츠오 군의 어머니와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메일로 새해 안부를 묻고는 하는데 그때는 다츠오 군과 다츠오 군의 어머니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인연을 맺게 될지 몰랐다. 그녀는 우치다 상이라는 남편의 성으로 불렸다. 우치다 상은 고급 공무원으로 세계 무도대회를 목표로 댄스연습에 열광하고 있었다. 모든 화제가 춤에 대한 것으로 왈츠, 룸바, 차차차, 자이브, 라틴 댄스에 대해 설명할 때는 얼굴에서 빛이 났다. 우치다 상 남편은 버섯 박사로 버섯을 연구하기 위해 전국의 산을 탄다고 했다. 그 또한 버섯 이야기를 할 때 얼굴에서 빛이 났다. 나는 이들 부부의 열정의 십 분의 일도 닮지 않은 다츠오 군을 바라보면서 묘한 연민에 잠겼다. 기질이 다른 부모와 자식.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건 짐작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다음은 프리스쿨을 졸업해서 지금은 사회인이 된 학생의 어머니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졸업은 했지만, 부모모임이 좋아서 계속 참가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에피소드는 너무 강렬해서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이 익숙한 듯이 껄껄껄 웃을 때조차 나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참고로 그녀는 누드족으로 집안에 있을 때는 모든 옷을 탈의한 채 자유인으로 산다고 한다.
“저는 가끔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데 벨이 울리는 거예요. 아들이 대답하기에 문을 열어주었죠. 근데 아들 뒤에 여자친구가 서있는 거예요. 뭐, 난 완전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눈앞에서 손을 휘휘 젓는 그녀를 어느 누구도 이상하다는 표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나는 가끔 그 순간을 돌이키고는 하는데 그들 사이에 앉아서 내가 느꼈던 이질감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화된 채 함께 웃고 있던 자신이 동일한 인물이었다는 게 참 신비하게 여겨진다.
그들이 타인과 다르다는 문제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어느 경계를 뛰어넘으면 그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유로워졌다고 할까,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하는데 별 어려움없이 순수해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는 건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대단한 장점에 속한다. 아이들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 다르고, 다 소중함으로 시간이 많은 어른이 곁에서 항상 이야기를 들어 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photo by 7회 전국 댄스스포츠 대회 및 세계 청소년댄스 스포츠선수권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