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장을 받은 날은 코카콜라 전광판이 보이는 오찌아이 방에서 엉엉 울었다. 이 종이 한 장을 얻기 위해 애썼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손님이 마시던 컵을 씻어서 1미터 넘는 컵 탑을 쌓았던 일이며, 빌딩 안이 개미집처럼 온통 한국 술집이 들어서 있는 신주쿠 가부키쵸에 손님용 한국 신문을 배달했던 일이며, 거대한 스포츠 센터에서 매일 아침 샤워장 청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던 일들이 콧물범벅이 되어 흘러나왔다.
친지들은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집도 절도 없이 망한 엄마에게 돈만 부치라고. 가봤자 남동생의 술버릇과 싸움을 고칠 수는 없을 거라고. 너까지 못 살게 된다고 친구들도 말렸다. 그러나 세상에서 단 한사람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해주신 분이 계셨다. 나의 지도교수 시미즈 선생님은 내가 대학 졸업 후 귀국을 하자 매년 여름이면 제자들과 서울을 방문해주셨다. 선생님의 먼저 간 아들이 살아있다면 아마 동행했던 구보타 선배 정도의 나이일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만났다.
의외였다. 여행은 싫어하신다고 공공연하게 말씀하시던 분이 나와 함께 명동 거리를 걷고 그 다음 해에는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고 또 그 다음 해에는 용산 전쟁기념관을 둘러보시는 동안 아예 여름방학 한 달을 서울에 방을 잡고 글을 쓰러 오실 결심을 하게 된 결실이. 시미즈 선생님이 머무시는 곳에서 내가 근무하는 출판사까지 일곱 정거장 정도 떨어져있었다. 내가 퇴근할 무렵이면 노교수는 글을 쓰던 방에서 나와 교보문고에서 시간을 보내다 마음에 드는 동화책을 사들고 출판사 근처 찻집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선생님의 호기심은 무한해서 낮에 사온 한국의 동화책을 펼쳐놓고 나에게 번역을 청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직역해서 읽어드리면 부지런한 선생님은 개강을 하면 일본의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수확한 책들을 소개할 터였다. 시미즈 선생님과 나의 저녁식사는 그대로 문학수업이 되었다. 아니 인생수업에 가까웠다. 그때도 변함없이 가족에 대한 경제적, 정신적인 부담은 내 등에 처덕처덕 업혀있다고 할 수 있었다. 엄마의 암 수술과 남동생의 입퇴원 반복, 어린 조카들. 너무 무거워서 사나운 짐승의 눈빛으로 변해가는 나를 위해 선생님은 말로 때리셨다.
‘이상 예전의 네 눈빛은 황야의 이리였어. 그런데 지금 네 눈빛은 죽어 있다. 넌 할 수 있어. 넌 엄마의 별이야. 아니 한국의 별이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눈물을 펑펑 흘려야했다. 문학은, 예술은 사기에 가까웠다. 현실을 보여주지 않고 이상을 노래하니까. 그래도 문학은, 예술은 위대하다. 그 빛을 따라 가면 실제의 나보다 멋있어지니까.
나는 시미즈 선생님이 고맙다. 어쩌면 선생님은 여행이 진짜 싫으신데 이상이 걱정되어 매년 비행기를 타고 오신 게 아닐까. 어쩌면 선생님은 이상이 지금 힘들어 보이는데 술 한 잔 사주면 지금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신 게 아닐까. 나는 선생님이 별이라고 해주신 단 한 명의 제자다. 그 별은 어쩌면 조금 더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해도 눈물콧물 피범벅이 되어도 별이 되려고 무지 노력하고 또 할 것이다. 비록 여행을 하기에는 어려운 시절이 왔어도. 별은 반짝이는 거니까, 멀리까지 다다를 테니까. 선생님 한국 쪽에서 반짝이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저예요. 저는 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