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체국아줌마 이야기로 돌아갈까 합니다. 청강생이 되어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 오치아이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생긴 저의 방문에 어느 날 비닐봉지가 걸려있었습니다. 일본 물가에 대한 감각도 없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변변한 아르바이트도 못했기에 저는 가능한 한 지출을 줄여왔고, 식재료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은 3단 여행가방에 챙겨온 마른 오징어며 김, 당면 같은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요. 자취를 하면서 제일 아쉬운 것이 과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오렌지를 일본에서는 귤처럼 자주 볼 수 있었고 300엔 정도면 살 수 있었는데 무슨 궁상인지 오렌지를 살 돈을 헌책방의 책들을 사 모으는데 쓰고는 했습니다. 그런 나날들을 마치 투시 카메라로 읽기라도 했는지 우체국아줌마는 저의 방문 고리에 사과 봉지를 메모와 함께 두고 갑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감정이 4조반의 다다미방에 사과향기로 퍼지고 있었지요. 저는 아끼고 아껴둔 당면을 꺼내 잡채를 합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고운 빛깔의 요리가 있을까 싶은 잡채 만들기에 도전하면서 아줌마가 오늘은 퇴근해서 허둥지둥 저녁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고 마음껏 즐거워했습니다. 잡채는 시금치의 초록, 당근의 주황, 달걀지단의 노란빛이 어울려 꼬불꼬불하고 긴 당면과 함께 식탁을 풍요롭게 하지요. 아줌마는 감격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지, 다음에 꼭 함께 만들어 보고 싶어했지요. 아이들이 정말 잘 먹었다고 하면서.
저는 우체국아줌마와의 교류를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웠죠. 그래서 어학원 다닐 때 만난 동갑 친구, 미숙이를 불러 우체국에 놀러가서 소개를 하기도 했어요. 그후 친구가 생길 때마다, 소중한 사람이 생길 때마다 저는 아줌마에게 소개를 했는데요. 한번 헤아려보면 미숙이, 유리, 임희, 츠나, 시미즈선생님, 구보타상 등 20여 년 동안에 걸친 친구 소개가 이루어졌어요. 세계의 여러 나라의 말을 배우는 분이기에 늘 제 친구들을 반기셨지요. 그리고 꼭 한국말로 자신을 소개했어요.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마리에요.’자신이 닉네임을 마리 퀴리에서 딴 마리라고 소개했는데 마리의 꿈은 동화작가랍니다. 그도 그런 것이 큰딸이름은 『빨간머리 앤』에서 따온 앤으로 일본식 발음인 안으로 지어주셨답니다.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나중에 손자의 이름을 소설가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었어요. 아, 마리 아줌마가 주신 냉장고 이야기를 먼저 쓰려고 했는데 음식 이야기를 해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