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는 가족력일까?

by 이은주

<ADHD는 가족력일까?>
주말을 엄마와 보내고 오는 손자가 공덕역 대합실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물었다.
“제가 가면 뭘 할거예요?”
“응, 우선은 뽀삐를 안고 말해줄거야. 형이 갑자기 사라져서 슬플테니까. 형은 지금 엄마랑 있고 두 밤 자고 올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면 뽀삐는 형이 보고 싶지만 알겠다고 하겠지? 그리고 난 책을 읽을 거야. 책도 읽고 편지도 쓸 거야. 그 다음에는 네가 올 때까지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푹 쉴 거야.”
손자는 그제서야 안심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혼자 집에 남는 걸 아이는 걱정해주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을 보내고 와서 이번에는 엄마와 헤어진게 서운하고 쓸쓸했는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앙앙 우는 손자를 안아주며 달랬다.
잠시 후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놀다 동요를 부르던 손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렇게 고백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가 슬퍼졌다가 왜 그러지요 나는?”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어린시절에도 그런 경험이 잦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유도 없이 기분이 좋아졌던 경험.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린 것까지 기억한다. ‘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러나 손자에게는 감정을 숨기고 머리를 쓸어주며 말해주었다.
“나도 기뻤다가 슬펐다가 그런단다.”
“그거 병이에요?”
“아니, 그건 하나의 특징이야. 우리는 예술가 가족.”하고 손자의 동그랗고 보드라운 볼을 쓰다듬어주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해주었다.

나는 우울증이 있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성인 주의산만증이다라고 커밍아웃을 할 때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잠시 침묵하는 걸 볼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가 암에 걸리면 사람들은 그 병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치료방법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유독 신경 정신 관련 병에는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왤까?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아도 무심한데 대해서 나는 ‘장애’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데 익숙해져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주의산만증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개성이며 기질일 수도 있는데 감추고 부끄러워야 할 병이라고 치우쳐있으니 인정하고 바로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나는 주의산만증을 극복했다고 표현하고는 하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막내조카의 경험담을 예로 들면 그는 지금 대학에서 ‘신소재 화공 시스템’을 전공하고 있다. 그에게 자신과 같이 ADHD 판정을 받은 조카를 위해 약물복용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때까지 약물치료를 받았는데 어땠는가 하고. ‘괜찮았던 거 같아요. 플라시보 효과도 있었던 거 같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실제로 중3 때 ‘ADHD’ 검사를 받은 결과 주의산만증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양육자인 나도 기뻤지만, 당사자인 막내조카의 기쁨에 찬 얼굴을 기억한다. 자신의 어떤 단점을 극복했다는 자각이라고 할까? 그의 온몸에서 자신감의 아우라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 내가 우울증을 극복했다라고 쓰면 지금 나는 우울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ADHD를 극복했다라고 쓰는 동안만큼은 과잉행동으로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던 자신이 어떤 창의적인 작업에 몰입하면서 더는 불안하지 않는 충일감을 맛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힘내서 제대로 죽으세요>
오에 겐자부로의 『회복하는 가족』에는 장애를 앓고 있는 작가의 아들 히카리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할머니와 헤어질 때 손자 히카리는 ‘힘내서 제대로 죽으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요양원에서 뮤즈와 제우스를 돌보며 한 달 사이에 여러 죽음을 경험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체험하면서 R. 까뮈의 『행복한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려는 듯 히카리의 인사가 맴돈다. 오에의 글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히카리의 여동생은 봉사활동 경험을 통해 오빠를 돕는데 필요한 지식을 얻었다고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과감하게 오빠에게 요구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가족 속 장애인을 사회 속 장애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공생이 가능하다.
‘힘내서 제대로 살자’가 아니라 ‘힘내서 제대로 죽자’고 마음먹으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힘내서 제대로 죽자’고 교육하면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우선 장애인을 가두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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