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사에 대하여

by 이은주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책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엄마는 낡은 어린왕자를 어디에선가 구해다주었다. 번역판과 프랑스어가 편집되어 있는 아름다운 하드커버의 책을 이리저리 넘기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책 첫 장의 헌사였다.
‘이 책을 어른에게 헌정한 것에 대해 아이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어른은 세상에서 내가 가진 최고의 친구입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심지어 아이들을 위한 책도 이해합니다. 세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그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만약 이런 모든 이유로도 충분치 않다면, 나는 한때는 아이였던 이 어른에게 이 책을 헌정하겠습니다.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습니다.(그러나 그들 가운데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헌사를 고칩니다.’(이정서 번역)

나는 그들의 인사 방식이 좋았다. 감사하는 마음을 선물 없이 감사인사로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여유라고 할까.
언어의 힘을 헌사를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은 감사하다는 인사로 족하다. 그런 사회 풍토를 흠모하며 자신의 책 첫 장을 감사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일이 과연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어린 나는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그리하여 오늘 나의 두 번째 책 첫 장에 쓸 헌사의 말을 고르다가 책상 위에 쌓아놓은 이런저런 책의 헌사를 읽는데 오후 시간이 다 갔다.
감사한 일을 쓰자면 지난 15년 세월 갈피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깨알같이 적을 수도 없다.
나의 기록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모리의 기록은 돌봄의 기록이고 인간애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에게서도 영감을 받았다. 나는 그녀의 프로필 전부를 사랑한다. 그리고 쓴다.

내가 알기에 가장 용기있는 사람,
엄마와 동생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라고
아시겠지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헌사와 같다. 같을 수밖에 없다. 삶이라는 거대한 강을 건너려면 용기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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