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에 엄마는 잠이 드셨다. 잠결에 엄마는 정명이에게 날도 추운데 낼 학교는 쉬라고 하셨고, 조각 잠에게 깨어나 알토란 레시피여야만 한다는 듯 동치미에 넣을 청갓을 찾으셨고, 굴국밥을 청하셨다. 저녁을 준비하던 나는 언덕을 내려가 야채가게에 갔으나 주인할머니께서 청갓은 벌써 들어갔다며 붉은 갓을 내어주셨다. 갓을 내어주시는 주인할머니의 터진 비늘 같은 손등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한번 마음이 시렸다.
계피에 생강에 배를 넣고 부글부글 끓인 수정과에 상주 곶감을 식후에 내어놓자 낼 가신다던 엄마는 아이처럼 맛있는 것이 많아서 내일 가지 않겠다며 정명이에게 소근대는 것이었다. 나, 엄마를 미워하다가도 이럴 땐 가슴에 두텁게 눈이 쌓이는 것이었다. 두터운 눈 집에 들어 앉아 어둠 속에서 무릎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낮에 보았던 오십여 개국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서시를 외워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