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소리없이 날아가는 하늘 속에
마음은 가득 차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다가와
헤아릴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도 우리가 됐소
바로 그때 나를 보면서 날아가버린
나의 솔개여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아
“무슨 책 읽니?”
친구의 조별 모임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단실 한귀퉁이에서 책을 읽던 나는 낯선 사람의 질문에 말없이 책표지를 보여줬다.
“평소에 이런 사회적인 책을 읽니?”
그 한마디 말에 나는 사회적인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영식 선배는 벽에 기대있는 기타를 들고 이 노래를 아는지, 알면 함께 부르자고 했다. 나는 우물우물 기타에 맞추어 그 시절 유행이었던 이태원의 ‘솔개’를 따라불렀다. 이윽고 인솔자가 와서 우리는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것이 고등학교 첫 여름방학의 시작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산에서 여름과 겨울을 났다. 미아리 단실에 가서 3박 4일 야영에 쓸 준비물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책읽기에도 박차를 가했다.
친구들 이름은 떠오르지 않아도 그들이 읽고 있던 책은 기억난다. 누구는 카뮈를 읽고 있었고, 누구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모든 책을 다 읽고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손에 들려 있었던 도스또예프스끼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관심을 가졌던 영식 선배는 그후 오랜 시간 동안 영향을 끼쳤다. 그에게서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선물로 받아 읽었고, 잡지 『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나의 성장기에 좋은 어른이 계셨다면 그 분은 영식선배였다. 수십 년 후에 영식 선배로부터 들은 한마디 말에서 나는 그 어른을 참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 야영을 할 때 바라는 건 딱 한가지였어. 모두 안전하게 야영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첫 야영지에서 텐트에서의 불편한 잠을 견딜 수 없어 새벽에 깨었던 기억이 났다. 여학생들이 조별로 잤던 텐트였고, 그 텐트의 지퍼를 열고 나오자 영식 선배는 탠트 앞에 침낭을 깔고 노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명색이 걸스카웃이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하는. 갓 고등학생이 되었던 내가 노숙을 하며 텐트 앞을 지켜야했던 선배의 마음을 헤아릴 리가 없었다.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신비한 숲속에서의 새벽에 요의를 느끼고 텐트 문을 여니 영식선배가 침낭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마르고 광대뼈가 보이고 푸석푸석한 아저씨의 얼굴이지만 깨우고 싶지 않아서 살금살금 운동화를 찾아신었던 기억이 난다.
야영지에서는 스스로 자립하여 하루를 경영하도록 지도했다. 야영지를 위해 답사를 가고,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는 동안 음악이 있었고, 지도를 보며 마을 탐색이 있었고, 장기자랑이 있었고 종교활동이 있었고 밤사이 비가 와도 텐트에 물이 차지 않게 영지를 손질하는 법을 진지하게 배웠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식량을 가지면 3일을 살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훗날 극한의 삶을 살게 될지라도 미리 배워두면 끝내 견뎌내리라는 암시를 그때는 받지 못했다.
나도 이제 그날의 영식 선배의 나이 보다 훨씬 나이들어버렸기에 그가 야영 내내 우리들이 ‘안전’하기만을 빌었다는 것에 동감한다. 인생 항해를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밤을 밝히고 있다. 곧 <오래 울었으니까 힘들 거야>가 나온다. 영식 선배에게 게릴라 전달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를 기대해준 첫 번째 좋은 어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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