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생 설명서

by 이은주

2.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살처럼 엄마의 말이 쏟아진다. ‘이제 오지 말고’ 번역기가 빨리 돌아간다. ‘내 이야기 끝까지 들어봐.’
“나는 혼자 있는 게 더 좋아.”
(이제 마지막 남은 여생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예상대로 정명이와 조카딸이 전해준 내용과는 달랐다. 이모의 등장은 예외였다. 그러니까 엄마의 여동생.
“전을 싸고 있더라고. 너에게 준다며. 전날 네 동생이 남은 전을 다 싸기 전에 네 것을 미리 덜어두었거든. 조금 넉넉히 덜어두었어. 네 이모도 주라고.. 아, 그런데 그 전에서 몇 개를 더는 거야. 그냥 가지고 가라는데 거, 말 되게 안 듣네.”
“할머니 것도 덜어야지.” 하는데
“요즘 난 기름진 건 안 먹거든. 자꾸 체해서. 그래서 덜지 말고 그냥 가져가라는데 날 미는거야. 놀랐겠지. 요즘 난 중심을 잘 잃거든. 그래서 넘어졌어.”

그때부터 난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눈물이 났다. 엄마에게 이모는 여동생이지. 그렇지. 옛날에는 장남, 장녀가 동생들을 다 돌봐야했지. 공부도 가르치고, 시집장가도 보내고. 자신의 자식이랑 손주들 챙기느라 잊고 살다가 이모생각도 났던거지. 그걸.. 말로 하시지. 생각만 한다고 한참 어린 손녀가 어떻게 미루어 짐작할까.
정명이가 태어나고 아직 손이 가야할 게 많던 중학생인 막내조카를 챙기던 내 손길이 갓난아이인 정명이에게 향해버려서 내 안에도 막내조카를 생각할 때면 회한 같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는데 엄마는 당신이 체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이모의 존재를 떠올린 것이다. 이제 엄마의 ‘남은 여생 설명서’에는 이모도, 나도 정명이도, 아들도, 손주, 손녀 모두 줄줄이 사탕처럼 번갈아 떠오르면서 안개에 쌓인 것처럼, 누에가 누에고치를 트는 것처럼 엄마를 감쌀 것이다.
나는 수면제를 먹는다. 푹 자둬야 해. 앞으로 갈길이 머니까. 내일 다시 또 힘을 내야하니까.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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