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인먼 되기

by 이은주


'잘 됐네’ 나의 문자에 아우는 이렇게 답했다.
이청준의 눈길을 읽지 않았어도 눈이 펑펑 내려 쌓인 길에서 엄마와 헤어져본 사람이라면 그 애틋한 기분을 알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내 손을 꼭 잡은 오그라든 얇게 주름진 손을 잡고 걸어 본 사람이라면 가슴속에서 대나무숲이 바람에 우는 소리가 난다는 것도 알 것이다.
엄마는 아우를 화살 같은 말로 저녁도 먹이지 않고 쫓으셨다. 아우는 엄마에게 저녁을 사드리고자 왔지만, 생전에 절약을 가르치고야 말겠다는 노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엄마의 이야기 상대는 나였다. 사실 아침에도 나는 죽을 들고 일을 하러가기 전에 들렸었다. 소화를 못 하신다고 식사를 잘 하시지 않기에 완전식인 ‘뉴케어’도 챙겨서 갔다. 잠이든 엄마가 깰까봐 죽을 두고 살금살금 도로 나왔다.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쌓고서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만나기를 수억 광년 동안 반복한 기분이 들었다.
‘잘 됐네’
아우는 정명이를 보자 오늘 처음 웃으셨고, 지금 막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순대국을 드시고 집으로 들어가시는 길이라는 내 문자에 이렇게 답했다. 아우와 나는 엇갈렸다. 그가 엄마의 고집에 토라져서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서 나와 정명이가 들어선 것이었다.
길 가장자리에 쌓인 눈길을 지나 엄마는 봄방학 중인 아이의 안내를 받으며 집으로 가고. 나는 멀어져가는 엄마와 아이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아서 클라인먼의 <care>의 일부분을 읽는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안내인이 되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손과 볼에 키스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는지를 다시 상기시켰고 그녀의 인지 능력이 나빠지면서부터는 그녀 옆의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했다.’
나는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에 이렇게 다짐한다.
‘이 책을 어젯밤 잠들기 전에 읽은 건 어마어마한 구원이었어요! 이 의사분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저의 대답도 예스가 되겠지요?’

오늘 난 억지에 가까운 엄마의 말을 들으며 엄마의 튼 손을 끌어다가 얼마 전에 사드린 영양크림을 듬뿍 발라드린다.
“얘가 왜 이래. 난 십 분마다 화장실에 간단말이야. 로션을 발라도 소용이 없어. 난 끈적거리는 건 싫어한다니까.”
영양크림에서는 실바람에 날아오는 여인의 향기가 난다. 잠시 노인의 방 공기에 생명이 깃든다. 끈적이지 않는다는 걸 당신이 제일 잘 알면서.. 영양크림이 줄어드는 게 그저 아까우신 게 아닐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얇은 피부아래 감추어둔 엄마의 말을 읽으려고 마사지를 계속한다. 뜨거운 내 손이 차가운 그녀의 손과 마음을 녹일 수는 없을까. 황야에 선 이리는 내가 아니라 늘 엄마였다. 늘 누군가를 위해 황야에 서야했기에 안식을 모르는 ‘황야의 이리’

‘그래서 나는 엄마의 안내인이 되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손과 볼에 키스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는지를 다시 상기시켰고 그녀의 인지 능력이 나빠지면서부터는 그녀 옆의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했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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