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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Apr 30. 2019

라이프 오브 파이-세상의 모든 신과의 대화

출근 길 무빙워크를 걸어가는 데 나를 지나쳐 걷던 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본다.  

"어머, 평근이에요?" 관광공사의 꽃인 인삼 코너의 란 언니다. 화교인 그녀는 한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어는 아직 서툴다.

"아, 언니도 평근이네요." 우리는 첫 만남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다. 음악, 영화, 그림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가끔씩 다른 세상에 다녀 온다는 점이 비슷하다. 언니의 아들은 대만에 유학 중이며 란 언니 또한 대만 유학 중에 만난 동급생이 지금의 남편이라고 했다.

얼마 전 언니는 남편의 제안으로 영화 한 편을 보았다는 화제를 꺼낸다.

"정말 아름다웠어. 그런데 나, 끝까지 봐도 이해 못했어. '라이프 오브 파이' 꼭 보고 나에게 이야기해 줘요. 아니, 우리 같이 보자. 언제 쉬어?"

언니는 한 번 생각하면 행동에 옮기는 타입이다. 벌써 쉬는 날 체크를 하고 있다. 쉬는 날마다 얼마나 강도 높은 노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한 채... 나는 실례가 되지 않게 손사래를 쳤지만, 언니는 모르는 눈치다.

그래서, 보게 된 것이 '라이프 오브 파이'

오직 란 언니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본다. 아니 봐야 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신에 대한 영화였다. 세상의 모든 신과 대화하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년 파이에게는 모든 종교와의 만남이 신비롭기만 하다. 길을 걷다가 '알라'라는 이름의 신을 만나면 무슬림이 되고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만난 마을 신부님과 대화 한 다음에는 힌두교도인 자신이 모시는 신께 이렇게 기도하기도 한다. '비슈누 신이여, 그리스도를 소개해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그런 파이에게 어느 날 저녁식사 때 형이 놀린다.

"올해는 메카에 가셔야죠, 힌두 예수님? 아님 로마에 대관식하러 가실 건가요, 교황님?"

파이의 엄마는 그런 형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그만해라, 바보 같이 굴지 말고. 네가 크리켓을 좋아하는 것처럼 파이도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는 것뿐이야."

너그러운 엄마와는 달리 파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3가지 다른 종교를 한 번에 믿을 순 없는 거란다. 모든 종교를 한 번에 믿는 건 모든 종교를 전혀 믿지 않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지."

그런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아직 자기 길을 찾고 있는 거라고 엄마가 말하자 파이의 아버지는 좀 더 강하게 말한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길을 찾겠어? 만약에 잘못된 길을 찾으면?"

"수백년 전 과학이 탄생했고, 아빠는 우주를 이해하게 됐단다."

"종교는 천 년도 더 전에 만들어졌는데 그렇지 못했지."

"사실 그렇긴 하지. 너희 아빠가 맞구나."

"과학은 우리에게 저 바깥의 것들에 대해 가르쳐줄 수가 있지."

"하지만 가슴 속에 있는 것을 가르쳐줄 순 없단다."

"누군가는 고기를 먹고, 누군 채소를 먹지. 난 우리가 모든 것에 다 동의할 순 없다는 걸 안단다. 그들이 뭘 믿게 하든지 맹목적으로 따라가진 말아라.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거라." 

한 가족의 평범한 식탁 대화치고는 상당히 밀도 깊은 내용이다. 놀라운 것은 신에 대한 각자의 입장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속삭이듯 대화할 수 있는 문화가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누구나 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고 혼란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이런 대화가 가능한 저녁식사가 있다면 우리는 사춘기 때 홀로 고독해 하며 기도할 신을 잃지는 않을 텐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세상 모든 신들의 이야기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그밖의 영상은 저녁식사에서의 질의 문답에 대한 나름의 답을 구하는 여정이다.

성인이 된 파이에게 신을 믿게 될만한 이야기를 청하러 온 소설가는 묻는다.

"그러니까 당신은 기독교인이면서 무슬림이군요."

"예, 그리고 당연히 힌두교도이기도 하죠." 파이.

"혹시 유대교는 아닌가요?"

"대학에서 밀교에 대해 가르치고 있긴 하죠."

"안 될 거야 없죠. 믿음은 방이 많은 집과도 같은 거예요."

"의심할 만한 방은 없나요?"

"많죠. 층마다 있는 걸요. 믿음을 살아 있게 만들어 주니까."

"의심하고 있는 동안 믿음의 정도를 테스트해 볼 수 있죠." 

요즘 '라이프 오브 파이'가 화제인듯 하다. 막내 조카도 학교에서 그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내가 영화를 보고 엉엉 울었다고 했더니 이런 문자가 왔다.

'사실은 파이가 동물을 먹었다는 것 같음'

????????????

나는 잠시 망설이다 문자를 보낸다. 

생존하기 위해 주인공은 그 모든 고통을 견디었지. 무시무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호랑이에 비유했구나! 육식동물의 비애라고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어.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사는지도 모른다는 이모할머니 말씀도 생각이 났단다. 고모는 영화를 보고 리차드 파커처럼 용맹스럽게 이 세상을 살아 내기로 했어. 

그렇다. 잔혹한 현실을 견딘 이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을 때 후폭풍이 몰아치는 법이다. 자의식과 죄의식이며 후회할 많은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물리적인 삶의 질이 나아졌다 해도 정신이 과거와 이별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은 건강하게 살 수 없다.

파이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아니 파이의 경험담을 듣고자 했던 우리도 마찬가지다.

잔혹한 현실 보다는 낭만적 픽션이 때로는 구원이 되는 법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신이 있고 없고를 따지기 보다는 당신은 어떤 스토리를 믿는가 라는 질문만 던진다. 그 질문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열쇠가 될 수 있겠다. 어떤 스토리를 믿는가에 따라 우리는 순결해 질 수도 있고, 순결하지 않다면 순결해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할 수 있겠고,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구원의 영역을 벗어난 이성과 과학을 선택할 수도 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오래간만에 부정을 통해 강한 긍정의 세계를 엿본 것 같아서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내일 아침에는 란 언니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해야지. "언니, 그것은 신에 대한 영화였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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