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우체국아줌마 이야기 2

야영지에서 제2의 고향으로

by 이은주

2.

오치아이 방에 첫 전자 제품은 자동응답 전화기였습니다. 밥상도 필요했고, 밥솥도, 냉장고도, 청소기도, 차가운 다다미방 공기를 따스하게 해줄 전기난로도 필요했지만, 수첩에 필요한 생활도구들을 메모해 둔 채 천천히 장만하기로 했지요.

서울에서 걸려 온 엄마의 전화는 매번 우울한 소식이었습니다. 엄마의 가게 이전을 반대하는 경쟁 상인들의 단합으로 가게 전화는 수십 개의 착신전화로 불통이 되어 장사를 개시할 수 없었습니다.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고, 배후를 찾아내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며 마침내 가게 영업을 재개했을 때 엄마의 곁을 지켜야 할 저의 빈자리가 엄마는 몹시 힘이 드셨을 겁니다. 엄마의 방식으로 살아 내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비통함과 돈(변호사 비용)이 드는지에 대해서 장거리 국제전화로 알려오셨지요.

엄마의 가게 이전으로 자신들이 입게 될 불이익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집요하고 부도덕하게 타인의 삶을 불행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공기들이 더러운 곰팡이 세균들로 가득차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다.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 속에 엄마를 두고 나 혼자 바다를 건너 오치아이의 방으로 숨어 들어왔다는 사실 또한 아팠습니다. 어서 빨리 돌아가 엄마를 구해야해. 엄마를 도와야해. 이런 내면의 목소리를 누르고 엄마가 나는 괜찮다고, 너만은 잘 살아달라는 메시지에 응하는 자식이 되어야했습니다. 남동생은 그때 2차, 3차 오토바이 사고를 내고 있었으니까요. 배우의 영혼을 가진 저는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족이나 이웃이 나에게 원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그 역할을 해낼 때의 충일감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치아이의 방에서 짐을 풀자마자 서울로 돌아갈 날짜를 헤아리는 저를 상상해 주세요. 필요한 물품들을 수첩에만 적어놓고 무슨 일이 있으면 3단 이민가방에 당장 짐을 꾸릴 수 있도록 대기하는 긴장감이 도는 방을. 그러면서도 삶은 진행되어야 하니까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코펠로 밥을 짓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낯선 역을 지나 4시간의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책상의 전전주인이 패션을 전공했기에 다다미 한 장을 차지할 만한 재단용 검은 책상에 앉아 한자사전과 일한사전과 한일사전을 쌓아두고 독해를 하다가 장거리 국제전화도 모자라 얇은 종이에 편지를 쓰는 초록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짧은 머리의 여자를.

오치아이의 방을 자신의 야영지로 삼고 캠프를 막 시작했기에 아침에는 간단히 세수를 하고 저녁에는 감자를 씻고, 요리를 해서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는 간이 개수대가 전부인 방에서 다섯 명이 공동으로 화장실을 써야하고, 코인 샤워기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위풍당당할 수 있었던 건 축복이었습니다.

그런 축복 속에 우체국아줌마와의 만남은 오치아이의 방이 잠시 짐을 풀고 머물다가는 야영지가 아니라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젊은이에게 6년이란 꽤 긴 시간입니다. 또한 개인이라도 이국에서 친구를 사귈 때는 적어도 자신이 그 나라를 대표하게 되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역할에 충실한 저로서는 퍽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모으게 되었습니다. 우체국아줌마와 함께 말이지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시름을 잊고 미소 짓게 만드는데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체국아줌마 이야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