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우체국아줌마 이야기 3

사진가의 사죄

by 이은주

3.


그런데도 나는 행복하지 못했어요.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순도 100%, 무균의 공간에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구해보고자 했는데, 막상 도쿄의 오치아이 방에 자리를 잡자 편의점에서 고른 아이스크림을 코앞에 대고 ‘이것은 나쁜 걸까’ 하고 급히 엔을 환전해 보고는 가격이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마치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엄마의 수면시간을 빼앗는 것처럼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피하지 못하던 자기 검열이 바다를 건너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요. 저는 도쿄에서 문화적 충격으로 긴장은 하면서도 대부분 행복했지만, 어째서인지『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처럼 한번 죽어본 심정으로 우울한 자신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깨알 같은 걱정이 나의 고단한 이마에 새겨졌다고 할까요. 하루를 마무리하고 솜이불에 누워도 눈앞의 벽은 촘촘한 그물망이 되어 저의 모든 의식을 옥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에 두고 온 엄마와 남동생 때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유학 같은 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것이 아닐까고 이유만 생기면 짐을 꾸릴 궁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떠나왔으므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면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간절했는지도 모릅니다. 집에 갈 날짜를 헤아리며 1990년 「작가세계」여름호에 실렸던 이제하 선생님의 시 일부분을 조용히 암송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다

혹은

하아얀 햇빛이 깔린

어느 도서관 정원이라 해도 좋다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노곤한 그리움이여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다정한 얘기가 하고 싶다

아니 그냥

당신의 그 성그런 눈속을 들여다 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다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지금 생각하면 저의 우울은 어쩌면 향수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광화문에서부터 걷기 시작해서 파고다공원을 지나 종로를 지나 혜화동까지 걸었던 수많은 날들이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 그리움의 파도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바로 등대와 같은 엄마와 남동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어느 날 우체국 아줌마는 세계의 언어를 배우며 여행을 하는 자신의 라보 모임에 초대를 하셨어요.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악어가 나온다는 샤쿠지 공원 이외에는 아직 아무데도 가보지 못했기에, 일본에 왔어도 일본사람과는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기대가 되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참고한 ‘일본 유학 가이드북’에는 일본인들은 자신의 집에 초대를 잘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는데 말이지요.

엄마는 3단 이민가방에 솜이불 한 채를 챙겨주셨고, 양장점을 하던 엄마의 친구는 저에게 검정 양복 한 벌을 지어주셨지요. 저는 예의를 다해 그 검정 양복을 차려입고 모임에 갔습니다. 검정 양복이 마치 그날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것처럼 꼭 맞았습니다.

얼마 전에 '성미산 마을 투어' 통역을 하며 알게 된 것이지만, 그날의 모임은 도쿄의 한 마을 공동체가 추구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바로 국제화 사회에 어울리는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지 싶었습니다. 라보 모임은 마을 회관 강당을 빌려서 진행되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각국에 다녀 온 소감과 현재 홈스테이로 머물고 있는 손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레크레이션을 한 후 소규모 단위로 헤어졌습니다. 우체국아줌마가 속해 있는 그룹은 그 그룹을 이끄는 어느 사진가의 3층 집에서 뒤풀이를 갖게 되었지요. 저는 어른들과 어울리기보다 일본의 어린이들과 어울리는게 마음 편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단순하고, 언어를 초월한 표정과 몸짓이 한국의 어린이들과 다름없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우체국아줌마의 지인으로 참석하게 되었으니 다시 한번 뒤풀이에서 자기소개를 해야만 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이국의 언어를 배울 때 몇 번이고 집에서 연습해 갔던 그 자기소개를 떠듬떠듬 하는 자신을 천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또 하나의 나를.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검은 양복을 입고서 말이지요. 한쪽 테이블에서는 투명한 볼에 엄지손가락만큼 커다란 포도가 얼린 채 가득 담겨있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대신 그 포도알을 입안 가득 물고 젠가를 하는 풍경이 저를 몹시 안타깝게 했습니다. 뭐랄까 한없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이 몇 백만 년에 처음 일어난 사건처럼 말이지요. 어서 빨리 자기소개를 마치고 얼린 포도알을 한입 가득 물고만 싶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낄 수 없이 바라보기만 해야했지요. 물론 어른들의 테이블에도 있었을 텐데 어디 그 자리가 포도알을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할 자리라야 말이지요.

그런 안타까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날의 리더 격인 사진가는 갑자기 무릎을 꿇습니다. 좌중이 조용해지자 그가 말합니다.

한국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자신들의 조상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사죄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내 눈앞에서 지난 세월 잔혹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용서해 달라고 무릎을 꿇는 사람과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왜곡하기만 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기사만 접했던 저는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가처럼 나도 소파에서 내려가 무릎을 꿇어야 하나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진가는 이제 막 알게 된 자신들의 범죄를 어떻게든 사죄할 방법을 찾고 있느라 정신이 없어보였습니다. 곁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아이들의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가 앉은 소파만 빙글빙글 도는 듯했습니다. 빨리 오치아이 방으로 돌아와서 이 복잡하고 혼란스런 하루를 노트에 적고만 싶었습니다.


인생 전체를 두고 볼 때 젊은이에게 6년이란 가장 화려한 정신의 불꽃 축제 기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 꺼진 오치아이 방을 올려다보면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에 있는 동안, 아니 지금까지 그날의 사진가의 사죄로 인해 저는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장래 친구가 된 재일교포 3세 나오미의 손에 이끌려 서울대 유학중 간첩조작 사건으로 사형까지 선고받았었던 서승 선생의 강연장에 가게도 했고, 일본 교수가 잔잔한 어투로 한국은 베트남 참전 당시 민간인 학살을 사죄했는지 물었을 때조차 감정적이기 보다는 세계사와 한국사를 끊임없이 조명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끼게 했습니다. 또한 번역가와 작가로서 만나게 된 후지타니 선생의 체험, 문학 심포지움에서 저와는 입장이 반대로 모두 한국사람인 작가들 사이에서 일본 대표가 되어 끊임없이 심판받는 기분이 들었다는 후기를 들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 대표가 되어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있었던 저의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사진가의 사죄를 받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패전한 일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그들이 겪었어야 할 고통이나 죄의식 같은 걸 짐작도 못했으나 그날 저녁 세계의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모임의 일본사람들과 사진가의 사죄는 오래도록 마음의 추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런 마음의 추가 진동을 멈추지 않아서였을까요? 문학 심포지움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지타니 선생은 나중에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써서 문학잡지에 소개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체국아줌마의 초대는 ‘일본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길을 열어주었고, 후지타니 선생의 단편 「을지로입구의 푸시킨」에 이어 한국판 「을지로입구의 푸시킨」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도쿄 3부작 형태로 구상하게 했습니다.

사진가의 사죄를 받은 그날, 오치아이 방에 돌아와서 쓴 일기는 우체국아줌마와 제가 베르꼬르의 『바다의 침묵』 등장인물들처럼 서로의 세계를 흠모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라는 감상을 끝으로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겁다고는 생각했지만 오래도록 아플 거라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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