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산정호수에서의 에피소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줌마는 산정호수를 죽기 위해 찾아갔어. 손목은 이미 한차례 커터로 그었지만, 얼마나 깊게 자신을 해쳐야 죽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어. 여행을 떠난 아침 나는 남동생과 다투었다. 그 아이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술을 마셨지.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엄마는 남동생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어. 내가 말했지만 믿지 않았지. 믿고 싶은 것만을 믿으면서 엄마는 자신의 삶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지도 몰라. 난 이해하지 못했어. 엄마라면 자식이 병들어 가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엄마라면 동네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멀리 아주 멀리 이사를 가야하는 게 아닌지. 엄마라면.. 나는 엄마와 남동생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단다. 싸움의 끝에 남동생은 아줌마의 목을 졸랐지. 두렵기 보다는 기분이 나빴어. 나는 누나인데, 엄마가 일하러 가면 엄마대신 먹을 것을 챙겨주고 놀아주던 단 하나뿐인 누나인데 날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 거였어.
아줌마는 죽기로 작심했지. 첫 번째 시도는 남동생의 눈앞에서 칼로 손목을 긋는 거였어. 남동생은 뒷걸음쳤지. 그냥 겁을 줄 셈이었는데 누나가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던 거야. 아줌마는 남동생 앞에서 존엄함을 지켜야했기에 손목을 그었지.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으니까. 엄마도 세상도 그 무엇도. 나는 너의 누나야. 모르겠니? 화난다고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 피가 떨어졌지만 그대로 집을 나와 버렸어.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났는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지,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 두 번째 죽음의 시도는 잠실대교였어. 집에서 나와 비틀대며 잠실대교로 향했지. 그 잠실대교에서 아줌마는 죽어버릴 작정이었어. 그렇지만... 잠실대교를 끝까지 건널 때까지 난 살아있었다. 아주 부조리한 무언가가 아줌마의 내부에서 꿈틀댔는데 남동생과의 문제 뿐만은 아니었어. 전날 저녁 뉴스에서 본 친구의 부고 때문만도 아니었어.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는데 점점 자식과 멀어져가는 엄마의 뒷모습 때문만도 아니었어. 그 모든 것이 한데 엉켜있었어. 이런 혼란스런 감정을 날씨는 안개로 감추어주었지만 잠실대교의 끝에서 아줌마는 다른 죽을 자리를 찾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운천행 버스를 탄거야.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물가에 가지 말거라 하고. 나는 결정의 순간에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던 거야. 산정호수로 찾아간거지. 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호수 주변을 맴돌자 10월의 축축한 공기가 산정호수를 어렴풋이 감싸고 난 그 속으로 들어갈까말까 들어갈까말까 머뭇거리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어린 여자아이가 심심한 얼굴로 흙장난을 하고 있었지. 그 아이가 집으로 가고 나면 아줌마는 호수로 들어가버릴 생각을 했어. 호수에 뛰어들 용기는 있는데 아이 앞이라 참고 있는 것처럼. 아이와 놀아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뒤돌아섰는데 어느 순간 아이는 아줌마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다시 데려다주고.. 마침내 여기에서 잘 거야 하고 비박할 잠자리를 알려주고 나자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지. 나는 추워졌어. 손목의 상처도 따끔따끔했지. 늘 잊은 척 지우고 있던 일인데 지금 생각이 난다.
그날의 정황을 만화로 그린다면 아줌마의 등에 검은 갓을 쓴 사자가 업혀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죽을 궁리만 하며 하루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요즘도 난 상상 속에서 산정호수를 찾아가는데 실제로는 가지 않을 걸 알아. 산정호수는 여기저기 개발되어서 예전의 호젓한 숲길도 사라졌고, 잡화를 팔던 미닫이문이 있는 그런 소박한 가게도 없고, 조용하지도 않으니까. 죽기에는 적당하지 않지. 그리고 이제는 삶의 지혜도 터득해서 더 이상 죽으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어. 죽으려는 그 간절한 욕망이 어쩌면 아줌마에게는 살고자 하는 강한 동기가 아니었을까. 잘 살고 싶었던 거야. 엄마하고도, 남동생하고도 사이좋게. 그런데 세 식구가 각자 살아내기가 너무 힘이 들었던거지. 남동생은 그후 학교에 다니지 않게 되었어. 아줌마는 졸업을 했고. 엄마는 아줌마의 첫 월급을 옷 한 벌 값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시커먼 동굴 속으로 걷어차버렸지. 그래. 기억난다. 아줌마는 그 옷 한 벌 값을 벌었던 자신이 신기하고 대견했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번 건 중요한 일이거든. 그리고 잊지 않았어. 얼마 번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쓰는가에 돈의 생명이 좌우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