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세상의 모든 어린이
그래도 엄마
by
이은주
Jun 3. 2022
아래로
엄마는 비밀 녹음되는 볼펜 광고지를 오려서 사달라하신다.
녹음해도 귀가 안 들려서 소용 없다고 하니까 이번엔 이어폰 광고지를 오려서 돈줄테니 사달라고 하신다.
비판적이던 성격은 의심하는 성격으로 심화과정을 겪고 있어서 둘만 있으면 괴롭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엄마의, 엄마가 아닌 모호한 실체와 마주보며 나는 혼란스러워 설거지를 한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오르락내리락 한다.
나도 안다 마주앉아 대화해야한다는 것을. 긍정의 언어로 그 볼펜 삼십 만원이나 하니까 다음 달 월급 타면 사드리겠다고 완곡 어법을 쓸걸. 거기서 귀 안 들리니까 소용없다는 소릴 해서 매를 벌었다. 다른 뮤즈에게는 정말 다정하게 대하면서 공정하지 못한 건 인정.
그래도 엄마, 지난달에 보청기도 사고 에어컨도 설치하느라 지출이 많았는데 녹음용 볼펜은 나중에 사자. 이 말은 죽어도 안 나오는 게 엄마여서 그럴 것이다. 아이에게 돈이 없어서 이번달 학원 쉬자고 말못 하는 것과 똑같이.
그래서 일정표에 엄마 고발용 일지를 적으며 후련해하고 있다. 근처에 대나숲이라도 있으면 내가 거기다 대고 일러줄텐데..
찾아보니 인터넷에 싼 것도 많다. 녹음 볼펜.
keyword
볼펜
무서운이야기
13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은주
직업
번역가
안데르센이 되고 싶어요. 달이 들려주는 이웃 나라 사람들 이야기를 전하고 마침내는 일본사람에 대한 자신의 이중적인 태도, 아니 다중적인 태도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팔로워
425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살기로 결심하다
돌봄 care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