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미우면 자기 파괴가 일어난다.

그렇지만 극복 가능하다

by 이은주

그래서 내가 나빠졌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말로 상처를 받지만, 상처를 받는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는 나를 많이 화나게 키우셨다. 예를 들면 반에서 30등을 하다 20등 안에 들어 기뻐하고 있을 때 10등 안에 들거나 1등을 못했다는 말을 들어야했다. 대학 입학식에 와서는 창고에서 입학식을 하네라고 말해서 놀라게 했다. 출판사에 취직해서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월급으로는 백화점에서 옷 한 벌 살 가격이라고 했다. 엄마 말은 다 맞았고 나는 늘 그래서 화가 나 있었다.

그런 엄마가 당신의 명의로 보증을 서다 그동안에 일구어놓았던 모든 것을 잃었다. 집도, 차도, 일터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내 명의로 빚을 물려주었다. 회사로 밀린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월급을 압류하겠다는 통지서가 오기도 했다.


알고 보니 엄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같은 방식으로 양육되었으며 나보다 더 심할 때는 훈육시 가죽벨트로 맞거나 벌거벗겨 문밖으로 쫓겨나기도 했고, 늦게 돌아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늦게까지 원치 않는 공부를 시켰고, 자식들 중 가장 성적이 뛰어난 엄마만 과외선생을 붙이지 않았고 오빠나 남동생에게는 과외선생을 붙여 집에서 먹이고 재웠다. 그런 환경에서 엄마는 소녀에서 여성이 되는 생리를 시작했고,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집에서 혼자만의 방 없이 아무에게도 보여서는 안 되는 생리혈이 묻은 천을 밤에 빨아 널어 말려야했다고 한다. 현대의 여성의 눈으로 보면 가정 학대에 가까운 일화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 엄마에게 삶은 가혹한 고난의 여정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밥은 밥통이, 세탁은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의 어린시절을 도난당한 것으로 느껴져 엄마는 우울해보였다. 코를 성형하고 쌍거풀 수술을 한 조카를 보는 엄마는 당신도 코를 세우고 싶으셨다고 한다. 번역을 하느라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밥 같은 건 하기 싫고 그렇게 책만 보고 싶은 삶을 동경했노라 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동료의 위치가 아니라 딸의 위치에서 듣는데 한계를 느꼈다.

이를테면 나는 다시 시간을 돌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유년을 선물하고 싶었다. 전쟁도 없고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하도록 형제자매도 절반으로 줄여주고 싶었다.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족집게로 쏙 뽑아내고 아버지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생각은 나아가지 않았다. 더 이상 상상력을 발휘했다간, 아빠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생겨나지 않았을테니까.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완전한 타인이 되어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는 딸의 위치가 한탄스러웠다. 인정해야만 했다. 엄마는 나의 엄마. 나는 영원히 그녀의 딸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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