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주회가 끝나고 정명이를 안아주시는 모습을 몇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면서 핸드폰 꺼낼 생각을 왜 안 했을까. 목요일엔 안젤라 김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비가 내렸고 연주회가 열리는 스톰프뮤직 건물 근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한 아이는 매우 행복해보였다.
연주가 시작되고 70분쯤 지났을까 정명이가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운동화를 벗고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버릇없는 행동이었지만 지적질하면 연주회의 인상이 굳어질까봐 귓속말을 했다. “집에 갈 때 택시타려고 했는데 그냥 전철을 타야겠어요.” 의자에서 반쯤 누우려던 정명이가 강아지처럼 예쁜 눈을 하고서 알겠다는 사인을 한다. 100분쯤 지났을까 아이는 틈을 타 귓속말을 한다.
“나가면 안 돼요?” “밖에 귀신 있어.”
그렇게 아이를 달래는 사이사이 나는 웃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왜 울어요?” 정명이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는다.
“너무 아름다우면 눈물이 나는거야.”
“쇼팽처럼요?”
“그래.”
아이는 만 3살쯤부터 어린이집에서 낮잠 잘 때 틀어주던 쇼팽의 녹턴을 밤이면 틀어달라고 졸랐다.
2.
정명이는 <고양이랑 놀아요>를, 나는 <숲,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었던>을 좋아했다.
정명이는 일기에 음악회에 다녀왔고 <고양이랑 놀아요>가 제일 좋았다고 썼다. 나는 아이의 일기장에 연주회 목록을 붙여주었다. <숲,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었던>을 들으며 눈물이 났던 건 낮에 엄마의 비데를 설치하기 위해 전기기사를 불러야했고, 예전에는 비데 구입에서 설치까지 구매와 동시에 한 사람이 알아서 진행해주었다. 그러나 요즘엔 인터넷 주문을 해야하고 설치기사를 불러야하고 전기담당은 따로 전기기사를 불러야해서 누가누군지 모르겠고, 청력이 약한 엄마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도 하지 않으며 노인은 무시하고 오직 구매자에게만 응답하려는 태도에 실망하는 엄마를 달래느라 감정을 너무 많이 소모하고 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물건을 살 수도 설치할 수도 없이 변화한 세상에서 자신의 존엄을 대체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정명이와 맥도날드에서 저녁 대신 햄버거를 먹을 때까지도 나의 감정은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숲,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었던>을 연주하기 전 안젤라 김은 이 곡을 쓴 배경을 설명해주었다. 캠프에 갔었고, 울창한 숲속은 4시만 되어도 캄캄한데 산책을 가게 되어 정말 무서웠다고. 그 무서운 숲길을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동안 어둠에 몸이 익숙해져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밤길을 걸어가는 동안 여우 소리, 새 소리,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 저 소리는 뭐야?’ 하고 속삭이는 소리를 표현해낸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나의 감정은 우윳빛으로 돌아왔고, 점점 투명해졌고, 가벼워졌다.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3.
정명이는 수첩에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메모는 짧은 시간, 학원에 가 있는 시간도 긴 이별처럼 여겨지는지 매번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로 끝맺음을 한다. 학교에서 욕을 배우고 왔는지 요즘은 나에게 쓰고 씨익 웃는다. “야야, 너 죽~어.”
나는 흥청망청 욕을 돌려준다. “야야, 너 죽~어.” 아이는 깜짝 놀라다가 깔깔 웃는다. 마지막으로 연주회 에피소드. 의자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연주를 듣던 정명이가 모기 물린 발에 나의 왼쪽 팔을 슬그머니 끌고가서 왼손 손톱으로 자신의 발을 쓱쓱 긁는 것이었다. 다섯 살 때는 잠자다가 코딱지 파서 내 콧속에 넣더니 너, 정말.. 눈을 하얗게 흘기며 웃었다. 손톱을 물어뜯어서 손톱이 없던 아이는 시원하게 한번 긁고 싶었겠지. 아무래도 이제 난 할머니가 되었나보다 야단치기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니.
4.
<Dear. My Friends> 연주회에서 ‘아름답게 버티고 있을게’와 ‘벚꽃 흩날리는 날’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독일 동요 메들리도 좋았다. ‘담다디’의 해석에도 공감했다. 나뭇잎의 연한 초록, 짙은 초록, 겹쳐있는 나뭇잎을 표현할 때는 이케부쿠로 급행을 타고 호야역에 내려서 자전거를 씽씽 내달려 양배추밭 한가운데에 있는 하얀 티셔츠를 입은 젊은 나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