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의 기분은 나빠보였다. 조간신문을 건네준 내게 신문을 던졌다. 나는 가끔 엄마를 돌보다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안타깝지가 않다. 발달장애 아동을 둔 부모는 자신의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게 바람이라는데 엄마보다 빨리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엔 다양한 감정이 들지 않고 죽음만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돌봄 신호라고 매뉴얼화했다.
이 돌봄 신호라는 것은 타인을 돌보기 전에 자신을 돌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돌보는 사람이 아닌 자격으로 세상과 만나야 하는 시간이다.
나는 앞치마를 풀고 엄마의 식탁과 부엌에서 멀어진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친구들을 만난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본다. 식료품 코너에서 처음 보는 허브를 사서 샐러드를 만든다. 송로버섯이 든 치즈를 잘게 조각내어 음미하며 먹는다. 눈물도 흘린다. 그러나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는다. 긴 잠도 청한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자둔다. 한 12시간쯤. 나는 회복한다.
2.
엄마는 자신이 신문을 내게 던진 것도, 왜 던져야했는지도 관심 없다. 오직 아픈 몸에 주의를 기울일뿐이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앓아눕는다. 제대로 된 먹을 것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장을 본다. 계절에 따라 다른 호박을 구입한다. 애호박. 단호박으로 반찬과 간식을 만든다. 감자로 샐러드와 간식을 만든다. 낙지로 볶음과 탕을 만든다. 그러나 평균점수를 받는 건 언제나 시래기 된장국. 엄마의 소화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하루에 한번 정도는 맛있는 걸 해드리고 싶다. 그러나 엄마의 입맛은 유년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손맛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따라갈 수가 없다. 할머니의 된장도, 고추장도 없다. 예전엔 맛나던 갈치도 꽁치도 사라졌다. 푸석푸석한 생선을 상에 두 번 내기는 틀렸다.
3.
정서적 지지를 해야한다는 건 말해 무엇하랴. 엄마는 당신 딸의 손으로 이루고 싶으신 게 많다.
조카딸이 좋아하는 열무김치를 만들기 원하고, 혼자 사는 남동생의 마른반찬을 해주길 원하며, 홈쇼핑에서 파는 생활가전 제품을 원한다. 나는 쉬고 싶은데 엄마. 곱게 나오지 않는 말들. 어떻게 하면 나는 내가 될 수 있을까. 엄마에게는 요령부득이다. 편애한다고 화도 안 난다. 그저 연민. 연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엄마, 나는 완전 잘 살고 있다는거지. 엄마 보시기에 딸은 기대도 좋을만큼 든든하다는거지. 그럼 뭐 조금 기대든지. 그러나 반찬은 이제 사서들 먹자. 그 시간에 난 잠을 자고, 산책을 하고, 나에게 행복한 시간이 무엇인지 찾을래. 그래야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매일을 한결같이 살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