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가까워지는 돌봄

by 이은주

산책 중에 만난 분이 몇 호 사신다고요?

212호

장애인으로 먼저 세상을 떴다는 아이는 딸이었어요?

아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은 어떨까요..

걸레질을 치며 나눈 뮤즈와 나의 대화다.


뮤즈를 돌보는 4년 동안 제우스는 멀리서도 기다렸다가 눈을 보고 적극적인 인사를 건네셨다.

뮤즈와 산책에 나선 오늘도 자신의 집 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가려다 말고 우리가 가까이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현대아파트에 갔었어요. 그가 말했다.


정말요? 내가 반갑게 답했다. 현대아파트는 내가 사는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왜 이런 대화가 가능했는가 하면 4년 동안 뮤즈의 재가방문을 하면서 이웃인 제우스의 얼굴이 익숙해질 무렵에 신기하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제우스를 만났다.


오전에 아파트 설비를 고치는 일을 하신다고 했다. 수도도 고치고, 바퀴벌레 약도 뿌리고, 겨울이면 손봐야 할 보일러 관련 일도 하신다고 했다. 나의 출근 길과 제우스의 퇴근 길 동행에서 모두 들은 것이다.

그의 나이 일흔은 넘었을 텐데 새벽 일을 나가셔서 내가 돌봄하러 출근할 때쯤 퇴근을 하신다고 했다.

뮤즈와 같은 층에 사는 212호 제우스는 고마운 분이다.


오늘도 대화중 9층에 사는 엄마의 세탁기가 흔들려서 as기간이 종료된 세탁기를 고치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 끝에 돌봄이 끝나면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뮤즈의 방 걸레질을 하며 묻는다.

세탁기 흔들리는 걸 고쳐주시면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2만 원은 너무 적지요? 한 3만 원 봉투에 넣어야겠지요?


그렇지.


저는 아빠 없이 자라서 집에 힘든 일 할 사람이 없었잖아요. 이렇게 힘든 일 도와준다고 하면 고마워요.


맞아.

뮤즈는 나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몸은 건강한데 손이 마비인 뮤즈는 하나에서 열까지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물며 냉장고 문도 열 수 없어서 오후에 마실 물을 따라두어야 하니까. 뮤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줄 때 얼마나 개운하고 후련할까.


엄마도 요실금으로 모아둔 팬티를 자주 빨아야하는데 탈수할 때마다 요동치는 세탁기가 얼마나 싫었을까.


돌봄을 마치고 제우스와 9층으로 올라가자 엄마는 정색을 하며 세탁기 안 흔들린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르신을 오래 상대한 제우스는 집안 곳곳을 살피며 도울 일이 없는가 살핀다.

화장실 비데가 살짝 중앙을 빗겨나 설치되어 있자 한두 번 좌우로 살피더니 중앙으로 돌려놓는다.


그것을 본 엄마 마음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봇물처럼 하고 싶었던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때도 덤덤히 앞으로의 할일 순서를 잡는다. 부족한 부품을 가지러 당신 집에 다녀오신다.

드릴 소리, 못 박는 소리가 난다.

엄마는 침대 위에 빨래를 걸어두고서 건조한 방에 습도 조절을 원하셨다.

못 3개와 길에서 주워온 긴 봉으로 그 꿈이 이루어졌다.


현관문을 열어두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봐서 싫다며 현관에 발을 치고 싶다 하셨다. 이때 또 못 3개가 박히면서 엄마의 꿈이 이루어졌다.


다음은 월동준비로 작은방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고 싶다는데까지 희망사항이 전달되기까지 한 시간이 흘러있었다.

오전에도 새벽 일을 하셨을 텐데 오후 3시쯤이면 일흔의 나이로는 다음 날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엄마는 아이처럼 졸랐다. 제우스는 물뿌리개에 물과 식용유를 섞어야 뽁뽁이가 떨어지지 않는다며 달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면서 제우스가 말했다. 봉사하려고 올라온건데 봉투를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돈을 넣은 흰 봉투에 몇 자 쓴 후 편지라며 드린 것을 부족한 연장을 가지러 가는 길에 보셨나보다.


안 받으려고 했는데 난 교회 다니니까 감사헌금 하려고.

감사헌금에 제 돈이 쓰이면 너무 좋지요.


엄마는 다음주 물뿌리개를 가지고 제우스와 올라가면 아흔 넘은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제우스를 알아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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