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3번 출구로 나와서 마을버스 9번을 타고 통인시장을 지나 박노수 미술관에서 내리면 옥인3길 5-1 1층, 피스북스가 있다.
책방 피스북스 중앙에는 지금 돌봄 관련 책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었다. 나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의 신간 <새파란 돌봄>을구매했다.
그는 첫책을 낸 소감을 이렇게 밝힌다.
'책은 곧바로 다양한 만남으로 이어졌다. 이메일, 사회관계망 서비스, 강연장에서 돌봄 경험을 나누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만나려던 청년 세대뿐 아니라 청소년, 중장년, 노년까지 여러 세대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가족 돌봄 경험에 집중해서 새파란 돌봄을 썼다'고.
사실 이 책을 고르게 된 배경에는 대화도중 정명이가 자신은 돌볼 사람이 많네요 라고 말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돌볼 사람이 많아진 젊은이들은 앞으로 어떡게 하지? 아이가 무심코 한 말에 나는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지금처럼 기꺼이 돌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른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떤 제도와 연대가 이루어져야 기꺼운 돌봄이 가능해질 것인가. 그 질문에 답 을 구하는 차에 <새파란 돌봄>이 눈에 들어왔다.
'돌봄이 길이 되려면' 꼭지를 펼치니 낯선 단어가 보였다. 일본의 이야기인데 전국 중고등학생 영 케어러 실태 조사에서 '돌보는 가족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중학생은 17명당 1명, 고등학생은 24명당 1명으로 집계되었다는 것이다. 영 케어러는 하루 평균 4시간 넘게 가사 노동을 한다는 것에 숨이 멈췄다.
만일 정명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하고 가정을 하자 미래의 돌봄 계획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주말이면 충분이
할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어른을 돕고 있는데 그 이상을 아이가 떠맡는 사회 시스템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자식을 키운 세대와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고 교육받은 세대와 오직 자신만을 중심으로 사는 세대의 조합이 오늘날 총 천연색 돌봄으로 나타나고 있다.
엄마는 '요양원'에는 절대로 안 가겠다는 세대다. 자신의 전부를 걸었으니 그 요구가 타당하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와 같은 경우는 자신의 전부를 걸었으나 무소속이나 다름없는 나는 늙어서도 자신을 돌보는 수밖에 없고, 나와 같은 세대는 이미 자식에 대한 돌봄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날을 대비해서 서너 가지 대비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돌봄받을 자세'가 아닐까.
우선 돌봄 받는 사람의 자세가 독립적이어야 할 것. 생의 마지막까지 집에서 일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기 돌봄에 철저할 것. 결국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이 관건인데 식사는 취사 가능하지 못하는 노년 인구에게는 국가가 도시락을 지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두끼는 도시락, 한끼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고구마, 감자, 단호박, 과일을 지원하여 영양상태를 지원했으면 좋겠다.
돌봄에 대한 가족지원 매뉴얼도 지침으로 배포하여 적어도 2주에 한번 방문하거나, 정기적으로 목욕을 씻겨드리도록 하는데 불가능할 시에는 요양보호사에게 부탁하여 치위생 및 세신을 부탁하여야 한다. 물론 스스로 가능하다면 혼자서 씻는 게 당연하며 눈이 어두워서 손발톱에 상처를 낼 수 있으니 손발톱 정리도 2주 1회 정도는 돕도록 해야 한다.
이런 기준이 있다면 정명이가 혹시라도 영 케어러가 된다고 해도 사회생활을 하다 2주에 한번 와서 전체적인 위생과 식생활을 보고 결핍된 것을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상의할 수 있지 않을까. 나머지 혼자 있는 시간은 영상통화로라도 돌봄의 연장선에서 통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제는 장기요양보험에서 cctv 지원도 함께해서 가족돌봄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돌봄 영역을 사회나 요양보호사에게 맡길 수 없는 현실에 적합한 돌봄 지원을 찾아내는 길은 정명이의 행복으로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봄으로 갇힌 젊음은 상상만 해도 우울하다. 돌봄으로 자긍심을 갖고, 잘 돌보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위해서라도 돌봄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