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앞에는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를 읽고 일본 노인복지기관을 탐방하고 펴낸 2018년 어사연 자료집이 있다.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펴내기 전 김수동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자료집 덕분에 나는 더 다양한 돌봄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생활 속 돌봄에 참고하게 되었다.
아이로부터 할머니와 “왜 같이 안 사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다시 한 번 자료집을 읽어보았다.
어사연은 ‘나이 듦과 노년, 노인복지, 노인복지정책, 죽음준비 등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며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후쿠오카에 있는 두 곳의 어르신생활시설을 방문한 곳은 바로 책의 무대가 된 ‘요리아이노모리’와 ‘사와야카테라스’다.
‘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되기까지 장기요양보험은 물론 후원자들의 재정지원과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의 자원연계를 통해 서비스 제공을 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사와야카테라스’에서는 보호자가 기관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잘 수도 있다고 한다. 모두 1인실로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유니폼이 아닌 일상복을 입음으로써 집 같은 편안함을 준다고 한다.
‘요리아이’는 “할머니 한 분도 보살필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복지예요!”라는 철학으로 설립되었기에 시민들의 공감을 사며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박은지 선생님의 탐방 보고서를 보면 사와야카테라스 그룹홈은 일반 단기보호가 1개월 전 신청해야 한다면 이곳은 보호자 당일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상적이다. 무엇보다 음식을 갈지 않고 그대로 제공함으로써 식사를 유도하며 연하곤란 방지를 한다. 억제, 가두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유롭게 행동가능하며 지역주민들이 보호해 준다는 안정망이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사와야카테라스’가 주식회사여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실 수 있는데 이 시기 가족이 머무를 수 있는 방도 있다고 한다. 치매 어르신은 명령, 스케줄을 싫어하므로 열쇠 없이 지내는 편이 더 나음으로 위험 여지는 있으나 입주 시 상의해서 동의받고 직원들이 영향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요리아이노모리’에서는 직원비율이 어르신 3명 당 직원 1명이며 기저귀 사용 어르신이 없으며 생활 적응 후 직접 화장실을 가시도록 유도하여 패드 정도 사용하도록 나아진다고 한다.
안미연 선생님은 일본의 재가복지시설을 견학 소감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분야는 평가들이 너무 많다고. 수많은 활동사진들, 불필요한 프로그램들, 정해진 시간의 식사시간, 정해진 시간의 취침시간을 지적한다.
27년 경력의 유경 사회복지사는 ‘요리아이 노인홈’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이 들어 도저히 혼자 살 수 없거나 치매에 걸려 일상생활이 어려우면,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마치 사회에서 격리되듯 시설로 사라지는 일련의 과정을 바꿀 수 있는’ 노년의 삶이 있다고. 그런데 이 일은 개인이나 시설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도 덧붙인다. 나의 부모님에게도 실현시키고 싶은 점은 또 있다. ‘지역밀착형 노인생활시설’ 일명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더라도 어르신이 숙박을 원하면 그곳에 마련된 방에서 주무실 수도 있고, 거처를 옮겨 시설에 들어와 살다가도 살던 집에 다시 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하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유연성이 바로 노인 돌봄의 핵심아닐까.
윤장래 선생님은 질의응답 시간에 메모한 것을 소개하고 있다. ‘일상성의 행복. 평상시 충분한 산책을 통해서 배회를 방지한다. 폭력성을 끌어낼 것인지? 잠재시킬 것인지? 치매 환자를 시설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세계로 끌어내는 것. 벚꽃 구경 가는 기대에 설레믈 가지고 계절을 기다리는 소소한 행복.’
이상 자료집을 읽어보며 요약해보았다.
나는 이렇게 좋은 돌봄을 엄마를 모셔와서 우리 집에서 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이 생겼다. 우선 유경 사회복지사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마치 사회에서 격리되듯 시설로 사라지는 일련의 과정’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한 엄마가 자신의 일상성을 찾도록 도와야한다. 아침이면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복지관에 걸어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짧은 아파트 내를 도보로 걸어온다. 점심에는 식사를 차려드리고 저녁은 혼자서 차려진 음식을 먹고 치운다. 병원에 가거나 할 때는 동행을 하고, 그밖에 자주 들리는 복지관 내 생활용품 가게는 혼자서 쇼핑을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일상도 쉽지 않아지면 데이케어센터에서 하루 반나절을 보내실 수도 있겠다. 어쩌면 집앞까지 차가 와주는 데이케어센터 이용도 힘들 때가 오겠지. 그럼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우리 집으로 모셔올 것이다. 낮 동안 일하러 갈 때는 요양보호사의 손을 빌리고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나의 노동력으로 모셔야 한다.
지난 토요일 막내조카가 할머니께 다녀갔다. 주말이면 큰조카와 막내조카가 겹치지 않게 오도록 말해두었다. 말하면 무엇하나. 일상은 변수가 많은 법. 일요일은 엄마 혼자 삼시세끼를 드시게 공백으로 남았다. 두 아이가 토요일 방문한 것이다. 막내조카는 대학생인 자기가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라는데 누굴 걱정하지 말라는건지 모르겠다. 전혀 나이 든 입장에 대해서 짐작이 가지 않는 젊음이 때로는 무섭다. 고모를 위해서 미리 시간과 날짜를 알려주면 좋지 않겠는가 물었더니.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반복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래서야 엄마를 우리집에 모시고 와서 돌볼 때 잠시 쉬고 싶어지거나 내가 아플 때는 가족의 돌봄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의 주체인 나를 배려하지 않고서 ‘알아서 하는 돌봄’이 가능하기나 한가. 가족 돌봄 주체인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에 맞추어 돌봄을 하겠다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할머니를 뵙겠다고, 혹은 엄마를 뵙겠다고 오는 것이지 나 대신 엄마의 돌봄, 할머니의 돌봄을 하러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 온 형제나 자식과 좁은 집에서 함께 있는 게 불편할 때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나는 부모 돌봄을 하는 가정에 힐링케어를 할 수 있도록 호텔이나 민박시설 사용권을 하루이틀 제공해주길 제안한다. 나 대신 가족이 내 집에서 부모 돌봄을 할 기회를 편히 주고자, 나는 내 집을 잠시 나가있고 싶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어야 사랑도 꽃피우지 않겠는가. 고된 노동과 경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내면도 건강해질 때 좋은 돌봄도 나오고 가족과 다투지 않는, 사이좋은 돌봄이 나오지 않을까. ‘왜 같이 안 사세요?’와 같은 좋은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지역과 국가가 유연한 돌봄 체제를 재구성해야만 가족이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겠다.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