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우리 고모는 할머니 점심을 매일 차려드린다.”
안방에서 친구와 놀던 정명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된장국에 넣을 표고버섯을 썰던 나는 의아했다. 아이 눈에도 할머니의 점심을 매일 차려드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보였을까? 아니면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그냥 귀담아두었다가 하는건가.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축구를 한다며 아파트 공터로 공을 들고 나갔다. 친구에게 자랑하던 정명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밤이 되자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기 전까지 정명이가 끝말잇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끝말잇기는 국어사전을 만들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다.
‘가지, 지렁이, 이빨, 빨대, 대나무, 무지개, 개나리, 리어커, 커텐, 텐트, 트럭, 럭키, 키다리 아저씨, 씨앗, 앗싸, 싸만코, 코딱지.’
깔깔깔 하고 우리는 웃는다. 무슨 단어로 시작하든지 마지막엔 코딱지로 끝나버리는 끝말잇기도 지루해지자 정명이가 이렇게 묻는다.
“고모?”
“응?”
“할머니는 왜 같이 안 사세요.”
“글쎄.”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은 내가 다른 부모님 돌보는 분들에게 마음속으로만 하던 질문이었지, 자신에게는 차일피일 미루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할머니와 같이 살면 좋겠어?”
“네.”
“그래, 그럼 주말에 놀러갔다가 할머니 모시고 올까?”
“네.”
아이는 신이 났다. 할머니가 오시면 숙제도 미룰 수 있고, 티브이를 보다 늦게 잘 수 있으며 간식으로 라면을 졸라도 되었다. 긴 설명 없이 아이의 제안에 동의했지만, 만일 엄마가 혼자 일상생활을 못하시게 된다면 난 엄마를 집으로 모셔올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엄두가 안 나는 게 사실이다. 엄마를 모셔오면 아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충실한 대화할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할머니를 만나러 온다고 작은 집으로 몰려들 가족들에게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내 몫으로 남는다. 식사 때를 피해 온다고 해도 내 쉴 곳을 잃을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난 더 이상 쉴 곳을 잃으면 버틸 수 없을 만큼 전력질주해 왔다. 이런 이야기를 천천히 설명한다면 아이는 알아들을까? 아니 나 자신은 납득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나는 무거운 짐은 피하지 않고 어깨에 짊어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는 나도 누군가의 등에 업히고 싶은데 과연 엄마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아이의 순백에 가까운 질문이 불면의 밤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왜, 같이 안 사세요?”
나는 오늘도 부엌에 서서 감자를 삶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