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CBS에서 2시간에 걸친 녹화가 끝나가고 있을 무렵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렸을 때 근무했던 요양원에 들어가고 싶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가고 싶은 요양원을 구현하고 싶어요. 마을 공동체에서 요양원의 모습을 모색하고 싶어요. 저는 독신이잖아요? 가족의 돌봄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가족 공동체가 아닌 다른 차원의 공동체에서 서로 소통하고 돌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싶어요. 오늘도 끝나면 서울역에 가요. 제가 운영하는 ‘친구가 모두 잘나 보이는 날엔’이라는 밴드가 있는데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가족 돌봄을 하는 분들이 계세요. 저희 엄마가 입맛을 잃었다고 하니까 횡성에서 직접 만든 된장을 주고 싶다는 선생님이 계셔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랬다. 밴드를 통해 소통을 하고 4년 전 나온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읽어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나는 옷깃에 달린 녹화용 마이크를 떼어내고 부지런히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댓글은 항상 일관적이었다. 메시지가 정확하고 삶에서 우러나온 글이기에 마음에 남았다.
-오늘은 제가 쉬는 날. 퇴원해서 방안에서 지내는 남편 목욕시키고 따뜻한 점심 챙겨 같이 먹으며 행복한 시간에 행복한 글을 읽게 되니 행복이 배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돌봄 동반자가 없어서 아버님 모실 때 많이 힘들었고 아이들이 곁에서 큰힘이 되어 주었지요. 친정엄마를 32년 모시다 요양원에 모신 뒤로도 엄마를 책임지고 계신 올케언니한테 확실한 돌봄 동반자가 되어 드리고 있습니다. 경험하지 않은 부분을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오늘은 아들이 남편을 퇴원시키고 와서 푸념을 하는 걸 들으며 선생님 글을 읽었습니다. 시아버님을 20년 모셨는데 아들이 저를 많이 도와줬고 그 힘으로 아빠 케어를 자연스레 하는 걸 보면서 정명이를 보게 되어서 용기 내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왜 같이 안 사세요?’라는 정명이의 질문으로 시작되는 글에 달린 첫 번째 댓글은 그녀였다.
-같이 살아보니 힘들었습니다. 그치만 정명이가 많이 도와줄거고 정명이가 커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많은 밑거름이 될 거예요.
나는 그녀 앞에 섰다. 아니 그녀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서울역을 오가며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는 그녀, 횡성과 서울 집을 오가며 남편의 재활을 돌보는 그녀를 만나자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사실 나는 묻고 싶었다. 어떻게 시아버지도 모시고, 남편도 돌보고 일도 하는지.
그녀의 남편과의 만남은 드라마였다. 아침마당에서 공개구혼을 하는 남편을 보고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제 방통대에서 공부도 하고 자신의 힘으로 돈도 버니까 장애를 가진 남자를 돌봐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는 대소변 더럽지 않아요.” 그녀가 말한다.
“저도요.” 내가 말한다.
우리는 공통점이 있었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을 좋아하며 기꺼이 한다는 것.
그녀가 너그럽게 웃으며 요즘 엄마를 돌보는일에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위로한다.
시아버지 모시고 장애인 남편 돌보며 열심히 살았는데도 자식들은 결핍을 말하더라구요.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자식들에게는 부족한 게 있는 법이에요. 엄마가 혼자서 우리 남매를 키우느라 열심이었던 지난날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까맣게 잊고 엄마를 돌보는 일이 힘들다고만 하는 나였다.
“저는 부러워요. 엄마에게 그렇게 해드릴 수 있잖아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사는 남편대신 아침 9시에서 밤 9시까지 일을 하며 시아버님 모셨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오빠와 올케언니가 삼십여 년 모셨던 어머니를,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자신이 모시고 싶지만, 지금 모시고 나와버리면 올케언니와 오빠는 뭐가 되냐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가 소녀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의 전신부터 잡았던 카메라가 얼굴만 줌으로 잡아당겨 보이는 듯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데 투덜거렸던 자신이 몹시 초라하게 여겨졌다. 지금쯤 엄마는 남동생이 차려드린 점심을 드시고 계실 것이다. 내일이면 나는 그녀가 담근 횡성 된장으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지. 세례명이 크리스티나인 그녀를 만나서 지쳤던 마음이 회복되고 있었다.
photo by 크리스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