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반란, 나는 못 모셔요

by 이은주


이 글을 쓰기 전에 벌써부터 욕을 먹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써왔던 글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의 글을 따뜻하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따뜻하지 않은 이야기, 일관성이 없는 이야기도 할 필요가 생겼다. 이 글을 써도 돌봄의 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어머니를 집에서 간병하는 선생님과 문자로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이야기도 쓰고 싶은데 허락해주시겠어요? 선생님의 돌봄도 저는 아주 귀해서 기록해두고 싶네요.’

‘선생님 전 최근 돌봄한 것이 후회되는 사람입니다. 도움이 될까요. 전 돌봄을 하겠다하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라서... 당시 요양병원으로 가라고 했는데 150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수입이 딱 그 정도여서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고 또 하다 보니 엄마가 요양원에 안 간다고 하셔서 못 보냈어요. 근데 그 세월이 만 9년, 10년째 되다보니 이제는 후회가 되네요.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전 힘들고 안할 수 있으면 안하고 싶어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2018년 12월에야 따서 5년을 정말 아무 보상도 없이 한 거죠. 모시고 딸 수도 없었죠. 8시간 수업을 듣고 실습을 나가야 했으니... 전 너무 질병에 대해서 몰랐고, 모르고 했어요. 다시 하라하면 전 아예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샘도 걱정되었는데 동생 분이 동역자로 나선다니 좀 안심이 되는데 한집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뭐라고 제가 하고 있는 돌봄을 말하겠어요.’


어머니 돌봄 10년차인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사람들이 정말 듣고 싶은 내용은 이런 육성이 아닐까 싶었다.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인정하는 돌봄. 예쁜 돌봄 말고 솔직한 돌봄 이야기. 오래 사시도록 최선을 다하면서도 고뇌하고 번민하고, 그러다가 감정이 무너지는 날이면 너무 오래 사신다고 투덜거리며 돌보는 돌봄 말이다. 사실 위태위태한 돌봄이 이야기 될 때 사회시스템은 변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렇게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을 사회 시스템이 알아야 제도를 만들고 유연한 돌봄 사업으로 개선을 하게 되지 않을까.


딸들의 반란. 나는 못 모셔요 라고 딸들이 일어나 말할 때 한국사회의 돌봄은 과연 어떻게 될까? 어떤 식으로 변해야 할까? 독박 육아가 힘들다고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을 하는데 독박 돌봄에 대한 대책 마련은 없다. 요양보호사를 따서 부모 돌봄을 하는데 한달 수령액은 40만 원 선이다. 3시간씩 주 5일을 근무하면 받는 요양보호사 급여보다 절반이 모자란다. 왜 가족 돌봄을 하느라 경력단절여성이 되어야만 하는 여성들의 보수가 턱없이 모자랄까? 문제가 많다. 하물며 가족 돌봄을 한 경우 요양보호사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나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딸 때에는 구직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돌봄 시간도 경력에 포함되어야 공정하니까.


부모 돌봄을 하다가 노후가 불투명해져서 불안한 중년을 경험해 본 적은 없더라도 상상할 수는 있다. 돌봄 노동에 따라붙는 근골격계 질환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팔목도 쓸 수 없고, 허리도 약해져서 늘 통증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삶의 질을 이야기할 여지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99%다. 아픈 몸을 돌보기 위해 자유없는 생활을 365일 강요할 수도 없다. 부모 근접권을 두어 부모가 사는 집 근처로 이동할 시 임대주택 마련 제도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자식이 사는 집 근처로 이사를 올 경우 임대주택을 마련해야 마을 공동체 돌봄이 가능하다. 마을 공동체 돌봄에서는 공동 세탁도 가능하고, 공동 식사도 가능해진다. 안심하고 교차 돌봄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어떨까, 헌혈처럼 돌봄 은행 제도가 있어서 미리 돌봄 봉사를 해두고 그 시간 동안만큼 필요할 때 돌봄을 부탁할 수 있는 제도는 또 어떤가. 부모 돌봄 1년차에서 20여 년차까지 중간중간 여행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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