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이들처럼

by 이은주


저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서 제가 취직한 요양원에 아버지를 모셨어요. 아버지를 직접 모시는 건 엄두가 안 나서요. 엄마가 혈관성 치매로 요양병원에 7년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계속 후회가 되더라구요. 저는 3층에서 일하고 아버지는 2층에 계셨는데, 코로나 시대라 비대면 면회 밖에 안 되는 때에 출퇴근하면서라도 아버지를 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결국은 아버지 코로나 걸리셔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돼서 치료받고 퇴원하기로 한 날에 돌아가셨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4년 동안 친구가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 밴드에서 내 글을 읽어주셨던 선생님들께서 현실성 있는 글을 올려주시고 계신다.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삶의 체험이기에 귀하고 소중하다. 엄마를 돌보는 입장에서 참고가 많이 되기에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을 정도다.


다음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후 자신은 요양보호사로서 요양원에 출퇴근을 하는 들꽃라니 님의 체험을 소개할까 한다.


가족돌봄으로 2년 정도 모시다가 대소변 처리 불가능해지시고 인지력도 떨어지셔서 요양원으로 모셨는데 스트레스라 때문이라고 믿고 싶은 자식 마음입니다. 딱 6일 만에 뇌경색이 왔는데 시설에서 인지조차 못했어요. 치료시기 놓쳐서 편마비 왔고, 걷지도 못하시고 식사도 혼자서 하실 수 있는 부분이 없더라구요. 갓난아기가 되셨지요. 병원 치료 마치고 이번에는 집에서 가까운 요양원에 제가 모시고 갔습니다. 시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감사하게도 시설 측에서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모녀의 요양원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적응기 7개월이 걸렸어요. 주간에만 제가 돌보고 야간은 다른 선생님들이 돌봐주시고 계십니다. 3개월 정도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모친 떼어놓고 퇴근하는 제 마음도 힘들었고, 모친도 시설을 노치원으로 생각하시고 집에 같이 가자고 하시는데 아리고 쓰려서 눈물 달고 지내다보니 이제는 집에 잘 다녀오라고 하십니다. 가끔 모친의 진심이 나오기는 합니다. 너희가 억지로 여기 보내서 왔다고요. 딸이 함께 있어도 집이 아닌 공간이 싫으신거지요. 잘 걷던 분이 시설 가시자마자 걷지도 못하고 수저도 못 들고 앉지도 못하며 거동 자체가 맘대로 안 되시니 꾀나 힘드신 거지요. 지금은 조금씩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시며 아직도 적응중이십니다.


그녀는 말한다. 엄마의 요구 10개 중에 7개만 들어줘도 건강하게 누리고 사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요즘도 5남매 중 둘째인 그녀는 찰밥을 해서 냉동실에 얼려놓았다가 엄마에게 드린다고 한다. 집에서 모실 때에는 일주일에 3마리, 곱게 다진 산낙지를 보양식으로 드렸다고 한다. 엄마와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시설이 나오자 ‘나 저기 데려다 줘’라고 말씀하셨을 때 고마워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이 복잡했다고 한다. ‘걸어서 가셨어요. 그런데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어요. 누나, 엄마가 이상해지셨어. 입도 돌아가고, 팔도 안 올라가. 시설에서 골든타임을 놓치신 거에요. 왼쪽 어깨가 아픈 건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인데.’


나는 그녀의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만남을 청했고 우린 가을에 찻집에서 만나 뜨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다시 한번 긴 통화를 했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죄책감에 대한 독백을 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의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고 싶지는 않다. 그런 충격을 경험하면 내적으로 소화되기까지 많은 대화를 시도해야 하고, 감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엄마는 늘 아프셨어요. 40년 가까이 아팠지요.’ 담담하게 말하지만 40년을 엄마 주변에서 지지한 딸의 얼굴은 곱지만 약간 지쳐보였다. ‘엄마에게 올인했다가 조금씩 나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녀를 처음 만났던 4년 전과 비교해서 많이 편안해보였다. 체념이라고 할까, 돌봄 성숙기에 들었다고 할까. 잘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기본만 해도 좋은 것. 서툰 돌봄이 차라리 좋은 돌봄이라는 것. 나머지는 엄마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과 가족의 몫도 남겨두는 돌봄을 찾은 것 같다.


photo by 들꽃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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