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의 직업을 사랑했다.
번역가라는 직업을 아끼는 엄마와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번역하는 동안 동업자에 가까웠다. 누구나 번역에 익숙해지기까지 번역어투를 찾는데 고심한다. 입말을 쓰는 것도 어색하다.
왜냐하면 모국어도 나이와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데 20대 초반에서 서른까지 도쿄에서 보내는 동안 늘 긴장하며 잠꼬대도 일본어로 할 정도였으니까.
초벌번역을 한 원고는 일단 엄마에게 갔다. 한국어가 이상하면 바로 각색에 들어갔다. 나는 엄마의 언어로 수정된 원고를 읽으면 번역으로 긴장된 뇌를 이완시켰다. 때론 엉뚱하게 비약한 문장에 글쓰기의 미래를 보기도 했다.
엄마는 살림은 미루어두고 하루종일 원고를 읽었다. 연애소설도 읽고, 추리소설도 읽고, 요리책도 읽었다.
추리소설 같은 경우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장르여서 번역하는 등뒤에 앉아서 에이포 한장이 완성될 때마다 낱장으로 프린트해서 그 자리에서 읽고는 원고 독촉을 했다.
추리소설의 경우 독서 습관이 맨 마지막 범인이 밝혀지는 부분부터 읽고 책읽기를 시작하는 엄마로서는 아주 감칠맛나는 시간이었고, 나는 편집자 대신 등뒤에서 독촉을 하는 엄마 덕분에 지치지 않았다.
나는 살인이 세밀하게 묘사된 부분을 글로 옮기는 것이 무시무시해서 매일 밤 가위에 눌렸다. 진짜 무서워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국내 첫 번째 독자인 엄마는 책의 가치를 알아본 열혈 독자가 되었다.
그해 나는 만부 번역가가 되었다. 게다가 인세 번역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동일한 작가의 책 번역의뢰가 들어 온 날 주말에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책을 읽다가 울었다. 그냥 서러웠다.
번역을 맡을지 거절할지 답을 주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생계형으로 다음 책을 계약할 상황이었지만 나는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일본어로 된 책이기에 내용을 들키지는 않을테지만 엄마와의 동업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도입부터 온갖 섹스가 나오는 문고판을 들고 앉은 할머니의 장례식장 안에서 나는 다른 친척들과 떨어져나와 혼자만 천장을 떠다니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도 데려가주세요 할머니.
그후 영화 한편을 보았다.
오다기리 죠와 키키 키린 주연의 <도쿄 타워>다. 그 영화에서 아들은 엄마의 장례식 때 원고 독촉(정확히는 확인해봐야겠지만)을 받자 화를 내면서도 약속한 일을 끝낸다. 말 그대로 펑펑 울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에게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다.
인세 번역가로 계약하는 책마다 엄마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 무엇도 아닌데 싫은 것만 많은 고집불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