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의 맛
팔도밥상을 보고 있었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 딸자식에게 직접 담은 장으로 청국장도 끓이고 조선간장도 나누어주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말한다.
“어릴 때 정성스럽게 못 키워서 미안하지. 청국장밖에 줄게 없어.”
말씀 참 예쁘게 하셔서 메모해놓았다. 나도 언젠가는 미안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지.
엄마를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고, 속상하고, 애틋하다.
먼저 고마운 점은 자식을 끝까지 믿어줬다는 점이다. 재능이 있는지, 머리가 좋은지, 비전은 있는지 따지지 않고 문학을 한다는 나를 믿어주었다. 장항아리 곁에 서서 딸들에게 ‘간장의 맛은 햇빛, 바람, 물이 결정을 하는거야’라고 가르쳐주는 노인처럼 엄마도 딸인 내게 햇빛, 바람, 물과 같았다.
엄마의 믿음이 언젠가부터 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미안함은 속상하고 애틋하여 이상하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엄마는 엄마 인생에 화를 내고 있었고, 나는 내 인생에 화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각자의 마음이 아프고 아파서 서로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에다 삽을 놓고 그 위에 고추장양념불고기를 올려놓고 구워주는 부모 곁에 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기 새가 모이를 먹듯 받아먹는다. 팔도의 밥상이라지만, 가족의 밥상이 원래 이랬다. 나도 가족들의 밥상을 위해 번역을 한다. 번역을 하다 쉬고 싶어질 때도 있다. 의자에서 일어나면 흐름이 끊기니까 앉은 채로 만화책을 펼쳤다. 임지이 작가의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방에서 쥐포를 먹으며 길동이 4컷 만화를 보았었다. 엄마는 내가 보이지 않으면 날 찾으러 만화방으로 왔었다. 만화를 읽고 있으면 책을 좋아한다고 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을 사주셨다. 중학생이 되었다. 동네 책방에 가면 엄마는 시집을 사주었다. 나는 그렇게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고, 번역가가 되는 꿈을 꾸었다.
엄마는 그 시절 책읽는 나의 미래를 굉장히 기뻐하며 상상하셨다.
물을 주고, 바람을 주고, 햇빛을 주었었지.
나 이제 엄마의 엄마가 되어서 물을 주고, 바람을 주고, 햇빛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간장의 맛은 곧 인생의 맛. 인생의 맛은 곧 사랑, 믿음, 소망이 좌우한다.
photo by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