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옷 나줘
영하 19도를 오가는 추위 속에서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장을 본다. 슈퍼마켓을 한바퀴 돌고, 또 한바퀴 돌아도 마땅히 해드릴게 없다. 요즘은 자주 체하셔서 드시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신다. 이틀만 제대로 안 드시면 금방 걷는데 이상이 온다. 기운이 없어서 계속 누워계시고 잠만 주무신다. 문어숙회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장바구니에 넣는다. 가격 14000원. 한끼에 드시기에는 양이 많다. 두 번 드리면 내일 먹겠다고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잘 안 드신다. 그래서 절반이라도 드시면 다행이다. 하루에 한 가지씩 입맛에 맞는 음식을 드리기로 했다. 반찬가게도 잘 이용하면 누워있던 엄마를 일어나 앉게 하는 반찬을 고를 수 있다. 고추양념찜과 곤드레 나물이 그렇다. 이렇게 변해가는 엄마의 입맛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것은 내가 요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 입소한 엄마에게 아무리 잘 해드리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까 가능한 한 집에서 모실 때 한 가지라도 더 맛있는 음식으로 기운을 북돋우게 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 마음대로 티브이를 보고 싶으면 보고 불을 켰다 껐다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엄마가 원하는 일상이라면 할 수 있는 한 돕고 싶다.
문어 숙회를 얇게 썰어서 초고추장에 드렸더니 맛있게 드셨다. 문어 숙회는 양은 작아 보여도 한접시 드시면 저녁까지 든든해서 좋다. 간식으로는 군고구마와 삶은 달걀을 탁자에 놓아드리고, 나이 들면 입이 자주 마르니까 침이 생기게 쓴 홍삼도 드려서 침이 많이 나오게 한다. 입안의 침은 소화 작용을 도와주니까.
찌개를 끓이다 냄비를 새까맣게 태운 이후 엄마는 가스렌지 사용을 잘 안 하게 되었다. 두려우신 것 같았다. 드실 만큼만 국그릇에 담아서 전자렌지에 넣고 데워드시도록 하는데 문제는 국이나 찌개의 양은 그렇게 정량만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다이소에서 보온, 보냉용 가방을 사서 하루 분량의 찌개나 국을 끓여 가져다 드리기로 했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엄마는 국이나 찌개 같은 국물 음식을 안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안 좋아하는 걸 표현하지 않고 대충 잘도 드시고 사셨구나. 그렇다고 좋아하는 나물을 드려도 예전처럼 맛있어 하지 않는 걸 보면 입맛은 인생 주기를 두고 수차례 바뀐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욕구는 어떻게 변할까. 엄마를 돌보는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예전의 엄마가 아닌 것 같다’와 '우리 엄마가 아닌 다른 엄마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알고 있던 엄마와 현재의 엄마, 그리고 변해가는 엄마의 접점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늦은 점심을 든 엄마가 이제 막 낮잠에 빠지려는 가운데 나는 초등학교 돌봄 교실에 갔다가 주산학원을 다녀오는 정명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엄마는 인사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왜 회색인가 갈색인가 한창 입고 다녔던 옷 안 입으면 그 옷 나줘.”
겨울 외투라고는 권색 파카와 친구가 준 권색 모직 코트와 크림색 코트가 전부다. 평소에는 권색 파카를 즐겨 입고 차리고 나가야 할 자리에는 크림색 코트를 입거나 권색 코트를 입는데 모두 엄마가 입기에는 길이가 길고 무거울텐데 괜찮을까.
다음주 월요일 엄마에게 크림색 코트를 들고 갔다.
“엄마 이 옷 말이야?”
누워있던 엄마는 아니라며 그 왜 회색인가 갈색인 반코트를, 네가 자주 입었던 그 옷 있지 않느냐는데 나는 전혀 기억에 없다. 결국 우리집에 오셔서 직접 찾아보기로 하고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한 대화가 떠올랐다.
“요양원에 있다 보면 나이 드신 부모님께 자식들이 돈을 잘 안 써. 속옷도 오래 입다보면 낡고 색이 바라잖아. 그럼 계절 바뀔 때마다 바꾸어드려야 하는데 잘 안 하더라.”
아직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워할까봐 나는 얼른 덧붙였다.
“물론 부모님 돌보는데 서툴러서 그렇기도 할거야. 나이 들어도 필요한 것이 있으니까.”
엄마는 ‘그 옷 나줘’하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줄 알아서 다행이다. 그러나 대체 엄마의 그 옷은 어디로 갔을까. 봄에는 지팡이와 보청기를 챙겨서 엄마의 그 옷을 꼭 찾아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