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돌봐야지
7살 때 정명이가 울면서 한 말이 아직도 사무친다.
“나를 잘 돌봐야지.”
그날따라 목욕이 하기 싫다는 정명이를 야단쳐서 씻기고 나왔다. 잡지사 원고 마감일이 겹쳐서 내심 아이가 일찍 자주기를 바랐지만, 아이 눈은 말똥말똥했다. 그것뿐인가 낮에는 이모에게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잘 먹여야지. 아이 볼이 홀쭉해졌어.” 엄마는 또 어떤가 “아이가 배고프다면 밤 10시라도 먹여야해.”
나는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대화는 손끝만큼도 가능하지 않았다. 오직 돌봄만 강요받은 채 갇힌 삶을 살고 있던 나는 수면 장애를 앓고 있었다. 때때로 호흡이 힘들 정도여서 한숨이 자주 나왔다.
억지를 부리거나 떼를 쓸 때 정명이도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짱구처럼 부푼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또 짱구처럼 옆으로 앉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를 잘 돌봐야지.”
큰조카가 자신의 삶을 찾겠다며 직장생활에 올인할 때 나는 저녁이 없는 삶을 몇 년째 살고 있었다. 어른들과의 관계는 사라지고 오직 육아와 돌봄 노동만이 계속되는데 숨을 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글쓰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글쓰기도 아이가 잠이 든 이후에야 가능했다. 지금은 혼자서도 티브이를 보고 놀이가 가능하지만 그때는 놀이의 대상이 꼭 나 아니면 안 되었기에 잠들기 전까지 함께 있어야했다.
나도 지지 않고 아이에게 응대했다.
“어떻게 돌보는 게 잘 돌보는건데?”
이 질문은 6살 정명이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사실 나에게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다들 나에게 잘 돌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돌보는 게 좋은 돌봄인지, 그 좋은 돌봄 한 번 해보고서 가능한지 안 한지 따져보라고 하고 싶었다.
그날 이후 아이의 말은 화두가 되어 날 따라다니고 있다.
서로가 만족하는 돌봄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암 말기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돌본지 3년이 되어가는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 돌봄이 과연 어땠는지.
“엄마, 아빠는 굉장히 고마워하셨어요. 좋아하시구. 그러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50대 아줌마가 집에서 딸에게도 남편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데 늙은 부모님은 작은 관심 하나에도 고마워하고 즐거워하시니까... 나도 즐거웠던 것 같아요. 물론 힘든 부분들도 많았지만. 토종벌 얻으러 검사 다음날 강원도에 다녀오셨어요. 양봉벌이 다 죽었다고. 꼭 마지막 잎새 주인공처럼 당신이 힘이 없어지니까 벌들도 병들어 죽어간다고 하시더니... 몸이 조금 괜찮아지시니까 아버지께서 소일꺼리는 있어야 한다며 가셔서 기뻐요.”
나는 몹시 감동했다. 후배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돌봄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고 있는걸까. 아픈 몸의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일, 바로 정명이가 나를 바라보며 했던 말과 닿아있다.
“나를 잘 돌봐야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다보면 돌보는 사람이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나처럼 돌보는 입장에서 자신의 글을 쓸 시간도 없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시간도 없어서 자유롭게 자신을 돌볼 수 없을 때 과연 좋은 돌봄이 나올 수 있을까. 돌보는 자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더 존중받고 싶다. 그래야 돌봄을 기꺼이 할 수 있으니까. 아이의 말이라도 사무치는 것이 아이가 해맑게 웃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인데 시간에 쫓겨 영혼이 없이 놀아준다든지, 잠들고 싶지 않은데 취짐을 강요하는 돌봄이 건강할리 없다. 더욱이 중요한 건 돌보는 사람의 권리, 혼자 있는 시간과 개인의 욕구가 돌봄이라는 영역에 갇혀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