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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Dec 18. 2023

영화 <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나는 가끔 우리 가족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때때로 자랑스러울 때가 있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가 있고, 세상 믿음직스러울 때가 있다.

가족의 범주 안에 독신인 이모도 늘 내 마음 한켠에 있다.


영화 <딸에 대하여>를 보았다.

영화 보기 전의 나의 마음은 전날 이모가 전해주지 말아야 할 조카들의 말이 귓속에 맴돌아 귀에 이명이 생길 정도로 상실감에 젖어있었다.

“아이들이 너랑 말이 안 통한데.”

나는 돈을 버느라 바빴다. 자라는 아이들의 옷도 계절마다 바꿔줬어야 하고, 남동생이 병원에 있었을 때는 담뱃값도 넣어줘야했고, 엄마가 대수술을 받았을 때는 간병을 해야 했다. 이런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이모가 자신도 나와 대화가 안 된다는 말을 우회해서 ‘아이들이 너랑 말이 안 통한데’라고 전한 것이다. 심장이 조여 왔다. 가족들이 날 제일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딸에 대하여>를 제작한 제정주 피디님에게 한바탕 털어놓고 성곡미술관 근처에 있는 ‘에무시네마’에서 영화를 보았다.

<딸에 대하여>는 12월 17일 CGV 압구정 신관 상영시 초대받았고, 장애인석에서 휠체어를 탄 엄마와 첫 상영관람 시도를 했으나 요양보호사 입에 어르신이 사탕을 막 넣어주는 장면에서 엄마의 ‘이제 가자’라는 소리에 바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쉬울 사이도 없이 캄캄한 극장에서 엄마가 언제 소리를 지를지 모른 긴박한 순간, 나는 이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영화는 또 볼 수 있어 그리고 엄마를 모시고 강남을 오다니 한강 다리를 건넌 것만으로도 훌륭해. 그랬다. 엄마는 다리 위에서 지루하다고 내려달라고 택시기사분께 호통을 치셨다. 엄마가 막힌 도로에 그냥 내려버릴까봐 문에 잠금장치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극장 앞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담배를 피우고 가지 않으면 여기에서 꼼짝도 하지 않겠다고 해서 나는 약속한 분들께 문자를 보내며 가슴 졸였다. 엄마를 모시고 <딸에 대하여>를 보기로 한 날 영화 예매를 했던 지인 두 분도 영화보기를 중단하고 그날 저녁 내내 엄마의 강남 여행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오늘 마침내 <딸에 대하여> 관람을 마쳤다.

영화 마지막에 야쿠르트 요양보호사, 이은주/ 야쿠르트 할머니, 최정애라고 자막이 오르고 잠시 후 삽입 대사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헤르츠나인)가 오르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 선배 아들 이름을 『서울의 봄』 촬영팀에서 발견한 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풀어보면 이랬다. 직업을 소개할 때 자신 있고 당당하게  ‘요양보호사입니다’라고 소개해도 상대방에게서 아주 친절하게 “아, 많이 힘드시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올 때가 많았다. 아직도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첫 인사에 대한 반응이 늘 이랬다. 요양보호사는 일도 고생스럽고 급여도 작아서 사람들이 기피할 것이라고 자신만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나는 작은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했다.

‘아닌데, 즐겁고 기쁠 때가 많은데. 뻔뻔한 사람을 만났군.’

 

<딸에 대하여>를 보고 나서의 관람 후기를 적어보면 돌봄 언어, 돌봄 노동, 돌봄 DNA가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루어졌고, 세련되게 묘사된 것에 박수를 친다. 요양보호사를 그리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암만. 영화 속 요양보호사가 새 직장을 찾을 때 대학 나오거나 이력이 좋으면 직업 소개하기가 힘들다는 사회적인 편견이 또 넘어야 할 산이구나 싶었지만, 그 정도는 미래의 우리가 바꾸면 된다.


영화에서 딸을 가진 엄마로, 요양보호사로, 직업이 아닌 내가 돌보는 존재에 대한 최선의 예의로 돌보던 어르신의 최후를 자신의 집에서 맞도록 행동한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는 굉장했다. 영화가 끼칠 사회적 영향을 생각해 보면, 요양보호사를 이렇게 충실히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오민애 배우밖에 없다. 그녀의 몸짓 언어가 그랬다. 눈썹, 주름, 손끝 연기가 그랬다. 무대 인사에 오른 오민애 배우에게 그래서 물었다.

“배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길 원할 것 같은데 주름 분장을 하는 역할을 맡았을 때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나요?”

그녀가 말했다.

“인간의 얼굴은 빛에 의해서 좌우되잖아요. 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이 작품에서 저는 좀더 나이들어 보이고 싶었고, 좀더 초라해 보이고 싶었어요.”

과연, 나는 여배우의 말에 감동했다.

그리고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주인공 여자가 빛에 의해 점점 아름다워지는 신비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듯이 <딸에 대하여>를 보기 전의 나와 보고 나서의 나가 달라진 것 같았다. 죽지 않고 살 힘이 났다고 해야할까.


#딸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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