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노무현 대통령의 뉴스를 채널을 돌려가며 보셨다.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셨다. 어제는 9월에 퇴원할 예정인 동생이 잠시 외출을 나왔다. 병원에서는 퇴원하기 전에 외출과 외박을 함으로써 떨어져 지냈던 가족과 만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조카는 아빠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눈치였다. 아빠가 오자 함께 마트에 가서 책을 골라왔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마트에 다녀온 동생은 더웠는지 티셔츠를 벗었다. 티셔츠를 벗었는데 맨몸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알게 된 분이 용 한마리를 그려주었단다. 가족은 모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자원봉사로 시작한 방과후 수업을 위해 나가야했던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엄마의 얼굴을 보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문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러니 엄마 세대는 더욱 그러시겠지. 나는 내 안의 정신 한쪽이 실올이 풀리듯 술술 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일본어 수업을 시작하여야 하는데,
주간 계획서를 써야 하는데,
가슴이 진동하는 걸 느꼈다. 수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나름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알콜치료를 받자고 입원시켰는데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 걸까. 마음의 동요를 감춘 채 아이들 앞에 서기 두려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수업은 마쳤다. 수업 절반은 일본어로 동요를 연습시키며 보냈다. 노래를 부르는 일. 조금이라도 현실을 승화시키는 일, 내 안의 유머를 찾는 일, 그것만이 오늘의 나를 온전하게 지탱시킬 수 있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내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획에 없었던 노래부르기 수업에 대만족.
우선 한국어로 동요를 불렀다.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서.
너하고 나하고 사이좋게 놀아보아요.
커다란 밤나무 아래서.
다음은 일본어로 불렀다.
오오키나 구리노 기노시타데.
아나타도 와타시. 나카요쿠 아소비마쇼.
오오키나 구리노 기노시타데.
아이들이 배운 노래를 합창하기 전에 나도 모르게 엉뚱한 대사가 나온다.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걸 알지요?'
'예'
'노무현 대통령이 천국에 가시도록 비는 마음으로 하늘까지 들리게 크게 불러주세요'
'예에'
아이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막 시작하는 얼굴로 동요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도 따라 동요를 불렀다. 그때 나에게는 동생이 새긴 용 문신과 그 문신을 하고 돌아 온 아들 때문에 느끼셨을 엄마의 고통보다 커다란 대의가 필요했다. 좀더 숭고하고, 좀더 아름답고, 좀더 위대한 의미를 둘 수 있어야했다. 그렇게 하면 내 아픔이 승화되지 않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하늘까지 닿도록 크게 크게 동요를 불러주었다. 고마워 얘들아. 덕분에 동생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났어.
집으로 돌아오자 동생은 외출을 마치고 돌아갔다. 아빠와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조카들과 나는 공터에서 원반던지기를 하며 놀았다.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며 대화를 시작했다. 아빠의 문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까 아빠 문신 보고 어땠니?'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리고 또'
'근데 용은 예뻤어요'
생각 외로 아이들은 쿨했다.
그런 아이의 말에 반사적으로 내가 대답했다.
'그래. 나도 예뻤어'
조카의 말을 듣고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혹시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하나. 아빠와 거리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였으나 별일 아닌 것이다. 할머니와 고모처럼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쉴 일은 아닌 것이다. 아빠는 아빠이고, 나는 나라는 식의 담담함이 좋았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조카들 앞에서 말씀은 안 하셨지만, 괴로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티브이 채널만 돌려가며 노무현 대통령의 뉴스를 보고 또 보고, 울고 또 울고... 자신의 처지를 오버랩시켜 울고 계셨다. 엄마는 뭔가 의식을 필요로 해보였다. 마침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조카들에게 핸드폰으로 새벽 5시에 알람을 해 놓도록 시켰다. 아무래도 할머니께서 노무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덕수궁에 가셔야 할 것 같다고 설명을 했다.
새벽에 알람이 울렸다. 자는 아이들을 깨워 서둘러 씻게 하고 옷을 입혔다. 택시를 타고 새벽길을 달려 덕수궁 앞에서 내린 우리들은 20분 동안 차례를 기다렸다가 조문을 마치고 긴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새벽 덕수궁 돌담길은 나무와 풀냄새가 향긋했다. 그래 이제 엄마는 울지 않으실 거야. 맞아 동생은 늘 문신을 동경해 왔어. 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함으로써 건강해지고 싶었던 걸 거야. 마치 부적같이. 꿈을 이룬 거지. 꿈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 이에게는 자동차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직업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문신일 수도 있다는 거지. 난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거야. 알콜 병동에 한 1년 입원시키면 사람이 바뀌어 돌아올 거라는, 내가 원하는 동생으로 돌아올 거라고 말이지.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들은 내내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아침을 먹고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고, 엄마는 다시 티브이를 향한 채 뉴스를 보시고 나는 일터로 향했다.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서.
너하고 나하고 사이좋게 놀아보아요.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서.
온종일 동요가 입안을 맴돌았다.
2009.5.2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