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같은 말들 2

by 이은주

동빙고 목요 수업은 오늘로 끝이 났다.

세탁소에서 찾아 온 정장을 입고 나갔다.

3년 반 동안 매주 목요일이면 나는 빵을 사고 동빙고 언덕 위 한 조그만 연립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맛있는 팥빵이에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카스테라를 가져와 봤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야채빵,

안녕하세요. 오늘은 치즈빵,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상에는 참 빵도 다양하다.

그 빵을 기다리는 장애인 아줌마는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걸 모르셨다. 내가 말씀을 드리지 않았으니까. 단지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내가 묻는다. 제가 몇 번째 선생님이라고 그러셨죠?

앉아서 생활하는 아줌마는 한 손을 들어 손가락 네 개를 보이셨다. 네 번째. 그래 나는 네 번째 선생님이었다. 다음 주엔 그녀의 다섯 번째 선생님이 오시겠지. 나는 다섯 번째 선생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적는다.

'국어 문제 풀이 보다는 글감을 소리내어 읽도록 지도 요망'

아줌마는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실제 배우니까 그 전 보다 재미있어.'

당신은 혼자 기나 긴 날을 연립주택에 앉아서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면서 소일하다가 문득 메모지에 음식 메뉴를 적어놓았던 것을 기억하실까.

순대, 족발, 만두, 냉면.

당신은 그 메모를 읽고 감동하던 나를 기억해주실까. 언젠가 수업을 마치고 일어서는 나에게 공부가 점점 짧아진다 하셨다. 나는 내 수업이 점점 짧아진다는 뜻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그게 이런 의미였다. 공부가 쉬워졌다는 뜻이었다. 쉬워서 책읽기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공부가 짧아졌다고 하신 것이다.

당신이 주신 보석 같은 말을 마음에 가득 담고 갑니다. 우리는 다음주 다시 만날 사람들처럼 가볍게 인사한다. 어쩌지 이런 식으로 헤어져도 되는 걸까... 나의 진심이 무엇인지, 무얼 원하는지 모호했다. 울 것도 아니고, 아쉽다고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할 것도 아니며 가볍게 이런 수인사를 나눌 만남도 아닌 이런 이별은 뭘까.

다음 수업은 유치원에 다니는 은이와 영이.

아이들에게도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고는 알리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인사하기를 만류했다. 선생님이 바뀌면 다음주 수업부터 그만 둔다는 회원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새로 오신 선생님과 수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단다. 3년 6개월 동안 녹을 먹은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인사 없이 가버리는 걸 보았으니까.

은이는 긴장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눈을 깜빡이는 틱현상을 보인다. 오늘도 받아쓰기에서 긴장을 했는지 눈을 열심히 깜빡인다. 칭찬을 듬뿍해주고 일어서자 '딱 한 번만 업어줘.' 한다. 일어서려던 내가 가방을 놓고 은이를 등에 태우고 마루를 엉금엉금 기어다닌다. 아이는 등에 꼭 달라붙는다. 일나간 엄마가 그리운 걸까. 은이는 내게 인사를 하며 자신의 막대사탕 하나를 선물로 준다. 언제나 그랬듯이 제 자리에서 점프를 하며 하이파이브로 인사 끝.

다음 집은 내가 작은아씨들이라 부르는 민이와 수와 중학생인 훈이의 수업.

훈이 어머니께는 지난주에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렸다. 매주 오뎅이며 잡채, 떡볶이 등 그날의 아이들 간식을 나누어 주시던 어머니와는 꼭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결혼 전 서점에서 일하셨다는 훈이 어머니의 책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었다. 수업을 마치자 그녀는 내게 작은 상자를 주신다. 상자 위에는 삼대 떡집이라고 적혀있었다. 시어머니를 도와 삼대째 떡집을 하신다는 말씀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떡을 선물로 받다니 기뻤다.

보석 같은 말은 수요일 마지막 수업에서도 들었다.

못 먹고, 못 입은 것은 억울하지 않은데 못 배운 것은 억울하다는 할머니의 국어시간.

우리는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달님의 외투'라는 책이었는데 떠듬떠듬 책을 읽으시던 할머니께서 글 내용을 읽다가 하하하, 재미있다는 듯 웃으셨다. 웃음과 동시에 할머니께서는 문장을 읽느라 글의 내용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자신이 이젠 책읽기가 가능하고, 책을 읽는 동시에 내용도 알게 되어 이리 웃게 된 것에 감동을 하셨는지 혼잣말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신다.

곁에 있던 나도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이 된 순간이었다.

어린이들과 한글을 배우는 어른들과의 만남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때로는 밥상에서, 때로는 안방에서, 때로는 마루에서 매주 정해진 시간에 만나왔던 그들. 매주 언제 오시냐며 시간을 묻는 훈이에게 선생님은 약속시간을 잘 지키고 있는데 왜 자꾸 전화하는가 물으니 훈이에게서 이런 대답이 돌아왔었다. '차가 식을까 봐요.'

일하는 엄마가 선생님이 오시면 차를 드리라고 하자 훈이는 매주 차가 식을까봐 선생님이 언제 오시는지 궁금해 했다. 작은아씨들처럼 종알대는 여동생들과 함께 엄마를 대신해서 매주 뜨거운 차를 준비하고 기다려주었던 훈이의 보석 같은 말을 기억해야지.

'차가 식을까 봐요.'

그 말에 갑자기 소중한 존재가 된 나는 '차가 식을까봐' 걱정할 만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차가 식을까봐요.'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보석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말이 있어 나는 그들의 선생님이었다. 한없이 부끄러운 선생님이었다.

문학만이 인생의 전부를 걸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멍청이가 이제 진정한 문학을 만난 것 같다. 삶이 곧 문학이라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곧 주인공이라는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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