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생긴 기쁨,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by 이은주

조카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생일에 초대할 친구가 없다고 했다.

ADHD라서 친구가 없나, 엄마가 없어서 친구를 만들지 못하나, 학교에서 적응을 잘 못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런 아이가 오늘은 이런 문자를 보냈다.

'나찰께 너두잘자구 니할머니두 잘주무시구 너의 이모(욱이에게는 이모가 있어서 고모라는 말보다 이모라는 말이 친근한가 보다)두 잘 주무시구 개두<욱이 문자 ㅋㅋ>'

'읍 하하 뽀삐에게도 굿나잇 인사를 하다니 욱이녀석 멋진데~'

'ㅋㅋ 네'

아이는 얼마 전에 식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욱이가 민영이가 자꾸 때려서 학교 다니기 싫대요."

민영이는 내가 몇 년 전 복지관 볼런티어로 일본어 강좌를 했을 때 조카와 같은 반이었다.

"너도 때리니?"

"예. 우리들을 부하로 아나봐요."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내가 수업 끝나면 학교에 데리러 갈까?"(직장에 메인 난 사실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할머니도 계시니까.)

"아니요. 무시하면 돼요."

"그럼 민영이 이야기를 매주 들려줄래?"

"예."

나는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런 일은 사내 아이들 사이에는 늘 일이라서 지켜보기로 했다. 일이 커지면 입이 가벼운 고모가 되어서 더 이상 속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한 주가 갔다.

"그래, 민영이가 요즘도 때리니?"

"아니요. 이제 때리지 못해요. 학교에 엄마가 왔어요."

"왜?"

"다른 반 아이를 때려서 그 아이 엄마가 학교에 왔거든요. 이제 선생님께 말하면 돼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기도 해서 오늘은 학교 숙제로 낼 '동영상' 만들기를 하러 친구 집에 간 조카를 데리러 갔다. 같은 조에 욱이도 있고 민영이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7시만 되어도 깜깜하다. 조카는 길치라서 밤에 혼자 다니면 곧잘 길을 잃는다. 여러 해 동안 자신이 다니는 교회도 혼자서 못 갈 정도라 고민한 적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민영이가 인사를 한다. 여드름도 생기고 아이들 중에서 제일 크다.

"밤이 늦었다. 고모가 욱이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민영이도 데려다 줄게."

욱이가 수줍게 웃는다. 민영이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아파트 골목 앞에서 민영이와 헤어진 후 욱이 어깨에 팔을 감고 묻는다.

"너 고모가 선물한 빵을 누나도 안 주고 혼자 다 먹었다며?"

욱이는 웃기만 한다.

"민영이가 때리면 말해 고모가 학교에 데리러 갈 테니까." 욱이는 웃기만 한다.

마침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신 욱이 어머니와 마주친다.

"지난번 빵은 감사했어요."

"저도 욱이랑 친하게 지내서 기뻐요. 사춘기에는 친구가 필요하거든요."

"신경을 많이 쓰신다고 들었어요."

"그럼요. 저의 작품 1번인 걸요."

웃으며 조카에게 '뽀뽀' 하고 볼을 내민다.

조카는 강아지처럼 쪼로로 다가가 와 볼에 뽀뽀하는 시늉만 한다.

장난끼가 생겨서 욱이에게도 뽀뽀, 하고 볼을 내밀었더니 우물쭈물 하다 역시 뽀뽀하는 시늉만 한다. 그래도 내 마음은 기쁘다. 아이들과 교감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웃고 계시던 욱이 어머니께

"중학생이 되면 뽀뽀도 안 해주겠지요?" 하고 반쯤 진심이 담긴 아쉬움을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신다.

어두운 밤길, 조카의 어깨에 팔을 감고 걸어오는 동안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이 동시에 생겼다.

늘 나를 소개할 때 따라붙는 고모예요. 라는 말 속에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께도 고모예요. 하고 소개를 할 때면 조카는 내 뒤에 숨어서 수줍어했으니까.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태어나서 봄여름가을겨울을 여덟 번밖에 못 봤을 아이들에게 고모가 엄마인 친구도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이해하는 법이니까.

"엄마가 없어서 고모가 엄마야." 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조카의 말을 듣고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 아이들 많아요. 어떤 애는 아빠랑만 살고, 그냥 할머니만 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생일파티를 해준다고 해도 초대할 친구가 없다고 해서 무척 마음 아프게 했던 조카에게 하나 둘 친구가 생기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제 곧 사춘기에 접어들 것이다. 할머니보다 아빠보다 누나보다 고모보다 더 좋은 친구가 생길 것이다. 키가 자라고 불끈불끈 힘도 넘치고 이런저런 생각에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때 자신의 눈높이로 바라봐 주고, 함께 고민하고 들어줄 친구를 갖는 건 소중한 일이다.

조카가 보낸 문자를 다시 한 번 읽는다.

친구가 생긴 기쁨,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문자를 보관함에 넣어 두어야겠다.

'나찰께 너두잘자구 니할머니두 잘주무시구 너의 이모두 잘 주무시구 개두<욱이 문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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