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가 선생님들의 사랑으로 충만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ADHD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도 선생님들이 애정으로 우리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제는 큰 조카 고등학교에서 일일 명예교사로 초대되어 갔다.
진로상담실에서 큰 조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예외없이 산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예전같으면 상담내내 머리를 조아리며 선생님의 선처만을 구할 터인데 올해부터는 그런 평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는 걸 보면 나도 엄마대행 십여 년차에 여유가 생긴 걸까. 한 학기가 지나도록 장점을 보여주지 못한 큰 조카를 위해 선생님께 두둔을 한다.
저희 아이는 공부만 못하지 얼마나 착한데요. 집에서는 할머니 설거지도 도와드리고, 매일 저와 함께 영어와 일어를 공부한답니다. 수행평가에서 단어시험과 듣기평가는 백 점을 맞았는 걸요...
나의 말에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단지 조회시간에 빵먹기, 떠들기 등 산만한 구석이 한 학기가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아이는 그것이 병인 것이다. 그 병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사회적인 평가를 받을 때 불리하지 않게 할 것인가.
이윽고 선생님과의 짧은 상담 후 2학년 2반 교실로 안내되어 갔다.
그곳에는 한 시간 동안 나에게 맡겨질 30명의 소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분한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들과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앞에서 기죽지 않기! 마음속 주문을 걸며 인사를 한다.
하지메 마시데. 와타시와 이은주도 모시마스. 요로시쿠 오네가이 시마스.
아이들이 와~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주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내가 수업을 하다가 존댓말을 하면 수업태도 안 좋네. 빨리 끝내고 가야지 라는 뜻이고, 반말을 하면 너희들이 마음에 든다. 재미있는데 라는 뜻이다."
엎드려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든다.
"그렇다. 세상은 차별이 있다. 편견도 있다. 앞으로 1년 반 후엔 여러분은 취직을 할 것이다. 150만 원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160만 원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험료를 내고 화장품을 사고 옷을 사면 그 돈이 다 나갈 것이다. 가난하다. 그렇다고 200만 원을 받으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200만 원을 받는다 해도 부자는 될 수 없다. 150만 원을 받는 사람은 명동에서 2~3만 원짜리 옷을 살 테고 200만 원을 받는 사람은 백화점에서 20~30만 원짜리 옷을 살 것이며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살 테니 가난하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가난을 견딜 수 있다. 희망이 있다. 행복할 수 있다. 오늘은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맨 뒤에 앉은 큰 조카의 얼굴이 보인다. 집에서 보던 고모의 모습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모습.
나는 준비해 간 프린트를 꺼내며 묻는다.
"오늘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교실 안은 조용하다.
"그럼 여기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나는 계속한다.
"평상시에 내성적이라서 기회가 와도 잘 잡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라."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손짓을 한다.
내가 묻는다.
"이름이 뭐지?"
"김가람이요."
나는 준비해 간 책 중에 『사랑하는 다나다 군』 표지를 넘기고 학생의 이름을 쓴다.
"가람아, 오늘 네가 이 프린트 좀 나누어주겠니?"
아이들이 일제히 책을 건네는 순간 와아~ 한다.
잠시 후 가람이가 프린트를 나누어주고 와서 테이블에 있던 프린트물에 말없이 손을 댄다.
"잠깐, 프린트가 부족하니?"
"예."
"그럼 부족한 사람이 와서 받아가야지."
수업 전날 나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교실 인원을 체크했었다. 30명 분을 프린트했지만 가람이에게는 2장을 빼고 건네줬었다. 부족한 프린트 물은 계획된 것이었다.
잠시 후 쭈뼛거리며 두 아이가 교탁 앞으로 나온다. 나는 이름을 묻는다. 이렇게 해서 30명 중 세 명의 아이 이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또 가람이에게 준비해 간 일본어 한자 사전을 건넨다.
"이 사전은 내가 일본어 공부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박물관에나 두어야할 만큼 낡았다. 수업하는 동안 모두 돌려 보길 바란다."
아이들이 표지 앞뒷장이 달아났으며 형태가 일그러진 낡은 사전을 뒤젂거리는 동안 내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는 엄마가 일하는 엄마였다. 하루종일 고생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빨리 어른이 되어서 엄마를 돕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산만증이 있어서 단기 기억력이 없는 편이라 공부를 못했다.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며 늘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번역가가 되었다."
한 아이가 다시 엎드려 자기 시작한다. 나는 모르는 척한다. 중간에 한 아이는 손을 들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나는 그러라고 한다. 아이의 손에 큰 두루마리 화장지가 들려 있다. 아이는 한 십오 분쯤 자리를 비웠다.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을까!"
내가 한 말을 칠판에 분필로 쓴다.
"졸업을 하고 귀국을 했을 때 한국은 IMF로 일자리가 없었다. 그때 나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냈고 배가 고팠다.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친구나 후배들 회사에 들려 밥을 얻어 먹었다. 나에게는 점심을 사줄 선후배가 많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후배의 사무실에서 해양대학교를 나온 후배가 국제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헤이 나 한국의 박인데... 내가 이러저러한 멋진 것을 가지고 있는데 무역박람회 때 보지 않을래?' 라며 후배는 일주일 간의 미국 일정에서 스케줄을 잡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전화 한통으로 어느 부스에 있는데 며칠 날 몇 시에 만나자는 약속이 잡혀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의 기획서를 써서 그 책을 내줄 만한 출판사 14곳의 리스트를 만들어 세 번에 걸쳐 보냈다. 마침내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그 책이 나의 첫 번역서가 되었다. 제목은 『친구가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 지금은 절판이 되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은 도서관에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나는 다시 칠판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 번역으로 얼마를 벌까."
다시 아이들을 향해 섰다.
돈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가능하면 정확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번역가는 가난하다. 특별히 유명한 번역가는 잘 살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칠판에 인세 계약과 원고지 별 번역료 정산을 보여준다.
"이것이 작년 내 번역료 수입이다. 너희들이 졸업하면 받을 연봉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늘 투잡을 한다. 학습지 교사, 음식점 써빙, 지금은 면세점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 너희들 앞에 꿈을 이룬 어른이 한 사람 서 있다. 가난하지만 꿈을 이룬 어른. 만약 여러분 중에 번역가가 되고 싶거나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고 싶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라.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오지 않으니까. 여기까지가 오늘 나의 수업이다."
수업을 마치자 십여 년 전에도 그랬듯이 반장이 일어나서 차렷경례를 한다.
수업은 끝이 났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과 함께 아이들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두 아이가 내 곁을 지나간다. 흩어진 책들을 챙기며 내가 묻는다.
"오늘 수업 어땠어?"
"좋았어요."
지나가던 한 아이가 내게 묻는다.
"저도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외국어를 잘 해야겠지? 일본어를 하면 JLPT 1급을 따면 좋겠고.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주렴."
아이는 수줍게 예 한다.
큰 조카가 내 책이 든 가방을 들어준다. 내가 묻는다.
"고모 수업 어땠어?"
"괜찮았어요."
"뭐, 꽤 짠데." 내가 웃으며 옆구리를 간지르자 큰 조카가 허리를 구부리며 살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