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내 동생 전화다.
어제도 나는 새벽 벨소리에 깼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전화했어." 새벽 운전을 마치고 술을 한잔 걸친 목소리.
"교통사고를 냈어. 비에 미끄러져서. 엄마는 내 사정도 모르고 화만 내고."
(동생의 이야기를 길게 들어줘야 할지. 지금 출근 준비한다며 끊을지 판단 중인 나)
"그래서 들어가기 싫어."
(역시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나.)
전화를 끊고 가슴에 손을 얹고 바로 누운 채 다시 잠을 청해 본다.
너는 모를 걸, 내가 밤이면 가위에 눌리고, 네가 문 두드리는 환청을 듣기도 하고 자주 깨어난다는 사실을. 너는 아마 죽어도 모를 거야. 레몬빛 스탠드 불빛을 의지해 간신히 잠이 든 누나를 새벽이면 전화벨로 흔들어 깨우면 다시는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천장을 바라보다가 옆으로 돌아 눕는다.
역시나...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우리 남매는 추석을 전후로 해서 우울증을 겪는다.
누가 먼저 그런 증세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우리 남매는 그렇게 가을이 오고 있음을 정신이 먼저 알아챈다.
무기력하고 침울한 상태를 몇 주 동안 견디어 내면 나는 다시 평상심을 찾는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마흔이 넘은 사람이 우울증 약을 먹는 건 당연하다는 글을 발견했을 때는 위로가 되기까지 했다. 그래, 다른 사람들도 가을이 오면 약간은 우울해하는구나 라고.
그러나 내 동생의 증상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하다.
봄이 올 때까지 정신 못 차리고 조울증 증세가 심화되는 것이다.
우울한 증상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동생이 가엾기도 하고 피곤한 존재이기도 하다.
동생은 2주간 코피를 아무 때나 쏟는다. 병원에 가보라는 말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더니 2주가 지나자 약간 불안한 내색이다. 엄마와 나는 고집쟁이에게 이겨본 적이 없기에 그대로 지켜보기로 한다.
전화벨이 여러 번 울리는 동안, 나는 귀찮은 전화를 그냥 무시해야 할지, 따스한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를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누나, 내가 술을 마셔서 뇌가 이상해졌나 봐."
"누나, 난 아무래도 일찍 죽을 것 같아."
"누나, 엄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
"누나, 난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예전 같으면 그래 죽어 하고 화부터 냈겠지만, 동생의 새벽 전화를 십여 년 넘게 받다 보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 알게 된다.
"아직도 코피가 난다며? 너 그러다가 뇌출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
동생은 알콜리즘으로 병원 처방을 받고 있다. 신경안정제, 수면유도제 등이 처방되어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약을 해독하는 기관인 간이 피로해 있을 텐데 술까지 해독시켜야 하니 몸이 아플 수밖에.
내가 속삭인다.
"병원에 가자."
"싫어, 안 가. 이러다가 죽을래."
이젠 어리광 좀 그만 부려! 나도 지쳤다. 이제 그만 좀 하자. 아니, 내가 먼저 죽는 꼴을 보려 하느냐... 이런 대사의 마지막에는 늘 아이들이 등장한다.
"너 죽으면 네 딸은 대학 못 가고 바로 취직해야 해. 네 공부 잘 하고 총명한 아들은 학원을 그만둬야 하고. 너 그래도 좋아. 진짜 그래도 좋으냐고. 죽지도 않고 쓰러져 있으면, 엄마와 나는 널 살리려고 또 빚을 져야 해. 우리가 널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응?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내 말에 내가 점점 더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버리자 5분도 채 되지 않고 또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 저편에서 울고 있다. 아빠를 닮아 일찍 머리가 센 은발의 마흔 넘은 덩치 큰 남자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남의 담장 한켠에 서서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는 게 보인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흑흑."
"울지 마! 하루 종일 코피가 나도 병원에 안 가는데 그럼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니? 응?"
"그래. 나는 못난이 인가 봐.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고 사고만 내고... 흑흑."
"그러니까 병원에 가서 고치라고. 넌 조울병이야. 작년에 나랑 통화하고 네가 스스로 알코올 치료받으러 간 건 기적이야. 술 마시는 사람이 스스로 병원에 간 건 기적이라구. 나.는. 네.가. 진.짜. 변할 줄 알았다."
내 목소리에도 조금씩 습기가 차고 있다.
"흑흑흑."
"이렇게 우는 게 바로 병인 거야. 그런데 또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해. 정말 살아야 하지 않겠냐? 네 아들은 똑똑해. 똑똑한 아들이 아버지 없이 크길 바래?"
자식들 이야기만 하면 너무 가슴이 아픈지 더 크게 우는 동생이 작심을 했는지 울면서 말한다.
"갈게. 병원에 갈게. "
"그래, 내가 내일 휴가를 내서라도 함께 가줄게. 그러니까 이제 들어가서 잠 좀 자둬. 내일 9시. 국립의료원에서 만나."
"조흔병원에 가고 싶어."
"조흔병원? 그래, 그게 어디 있니?"
"네가 가고 싶은 병원에 가자."
"몰라. 조흔병원."
"네가 모르면 누가... 아니. 아, 좋은 병원?"
"응..."
"그래, 좋은 병원에 가자. 그럼 서울대병원에서 만나. 늦지 마. 알겠니?"
전화를 끊은 내가 이젠 완전히 잠이 깨어 벌떡 일어나 형광등을 켠다.
조흔병원? 후욱.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읊는 나.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2012.11.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