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혹은 나에게

by 이은주

작년 5월 1일을 기억하니? 네가 자발적으로 국립의료원에 치료를 받으러 간 날이다.

나는 2011년의 기적이라 부르지.

알콜중독자는 절대로 스스로 병원에 가지 않거든. 근데 너는 그걸 해냈지. 2010년 가을을 기억하니? 우리 남매는 추석 전후가 되면 우울증을 앓지. 이건 아주 오래되었어. 그때 너는 자신이 우울하다는 걸 모르고 술을 다시 입에 대었지. 그리고 10월부터 4월까지 계속 술을 마시게 된 거야. 알지?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쭉 계속되어버리는 걸.

급기야 엄마를 위협하고, 집안을 어지럽히고 아이들은 그 모습을 모두 보았잖니. 그날 새벽, 5월 1일 너는 울면서 전화를 했어. 그리고 기적처럼 네 발로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지.

2012년 수첩에도 기념일이나 생일처럼 누나의 수첩에는 '동생이 스스로 병원에 간 날'이라고 적혀 있단다. 5월 4일 메모에는 '동생이 아들과 함께 잠실 야구장에서 홈런볼을 잡다'라고 적혀 있다.

너는 약에 취해서 비틀비틀 거리면서도(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너에게 치유라는 희망의 비틀거림이니까) 아들에게 홈런볼을 잡아주었잖니. 아빠로서 네가 아들에게 해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오늘은 기쁜 날! 알콜중독은 재발, 삼발, 영원히 고칠 수 없다는 걸 알지. 하지만 너는 오늘도 기적을 만들었어! 스스로 입원 치료를 선택했거든. 너는 아티반을 먹고, 링겔을 꼽고 금단증상을 없애기 위해 침상에서 잠들어 있다. 가슴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누나는 곤히 잠든 네 얼굴 위로 눈물이 떨어질까봐 얼른 고개를 든다.

이봐, 동생.

누나는 아직 젊고, 아이들은 아직 어려.

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기다려줄 수가 있다. 하지만 엄마는 달라. 이제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어.

너의 실패와 기적을 반복해서 봐 줄 만큼 엄마는 젊지 않다.

엄마는 네가 살짝 밀기만 해도 여기저기 멍이 드는 게 사실이야. 네가 술을 마시고 험한 행동을 하고 나면 엄마는 며칠씩 잠못드시고 깜짝 깜짝 놀라시는 걸 너는 아니.

그러므로 이번 입원이 기적이 되고 축복이 되는 건 오직 너에게 달렸다.

집중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해.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 첫 번째 네가 할 몫이야.

성급히 퇴원을 서두르면 우리는 정말 실망이다.

네 딸이 쓴 편지를 노트에 베끼고 또 베껴 쓰렴. 지루한 시간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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