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그러니까 내가 10년 동안 살던 곳에서 이사한 후 오랫동안 정을 붙이지 못한 동네를 우리 동네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이 있다. 그러니까 이사한 지 4개월 하고도 21일 되는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출퇴근 길 지나다니는 골목에는 나의 이사와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작은 중식당이 있다. 간판 또한 흰색 바탕에 큼지막한 검정색 글씨로 '작은 중식당'이다. 언제고 한번 가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며 가게 안만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비내리는 저녁 퇴근길 마침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마음이 생겼다. 4인용 탁자가 둘, 2인용 탁자 하나가 있는 가게에는 이미 젊은 부부가 요리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유리는 기온차로 밖의 치킨 가게 전광판과 지나가는 자동차의 전조등이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 반사되는 빛의 유희를 적당히 톤다운시켜주어서 퍽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밀고 들어설 때 눈에 들어왔던 메뉴를 주문하자 깔끔한 주방 안에서는 튀김 요리할 때의 정겨운 소리가 나고 그릇 부딪치는 소리, 분주히 움직이는 발소리가 비내리는 밤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따뜻했다.
나는 살짝 지쳐있었다. 막내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이 얼마 전에 있었다. 이제 그 아이를 칭할 때 3인칭을 써도 될만큼 그는 훌쩍 자라있었고, 졸업 후 가족과의 점심식사가 끝나자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간의 톱니바퀴들이 불규칙적으로 돌다가 마침내 스프링처럼 튕겨져 나간 기분이라고 할까. 오즈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처럼 결혼한 자식들 곁에서 배경화면처럼 앉아 있던 노부부의 심정이라고 할까. 나는 언제나 나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닌 고모로 나이를 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동생에게도 살짝 지쳐있었다. 2년 만에 퇴원한 동생은 애완견인 뽀삐 1세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이며 스무살에 싱글맘이 된 딸의 출산 소식에 놀라 퇴원 당일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동생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진 않았다. 누구라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 만취해서 정신줄을 놓게 마련이지. 그렇겠지. 저도 힘들겠지.
문제는 이러저러한 사실을 다 알면서도 뿌리 깊이 생기는 슬픔의 정체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절규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내가 정신병이야? 거긴 말짱한 사람도 들어가면 정신이 돌아버려. 정신병은 낫지 않는단 말이야." 동생은 따졌다. 처음엔 자신이 치료를 받겠다 했지만, 자신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 나 역시 많이 고민했다. 강제 입원을 고민하며 상담을 받던 복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권이요? 그쪽만 인권이 있나요. 불안을 느끼고 위협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인권은 있어요." 결정할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동생에게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2년 동안 내 마음도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동생을 병원에 넣고 편안하게 있을 누이가 세상에 어디 있나. 하지만 나도 이제 늙어간다. 통장에 잔고 없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너의 아들은 공부를 잘해 자사고에 붙었다. 자사고 다음은 대학에 진학하겠지. 그때까지 누나가 버틸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봐.
이런 말들을 동생에게는 하지 못했다. 신경이 약한 동생에게 자극을 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세월을 통해 알았으니.
그래 나는 살짝 지쳐있었다. 바로 집이 저기인데 걸어가도 꿈속처럼 닿지 않을 것 같은 날. 걸어도 걸어도 골목이 자꾸만 바뀌어서 꿈이 깰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날 나는 환하게 불켜진 '작은 중식당'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앉았다. 수첩에 메모를 끄적이는 동안 주문했던 요리가 돛단배 같이 흰 접시에 담겨 나왔다. 검정색 젓가락은 집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길었다. 그 긴 젓가락으로 깐풍기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코끝에 느껴지는 새콤한 향기, 달콤한 간장에 섞인 마늘맛이 감긴다. 아아. 어째서 나는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앞에 두고 엄마며 동생이며 조카들 얼굴을 생각하고 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한시도 그들의 얼굴을 집에 두고 오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맛있는데, 이렇게 예쁘게 차린 상인데 어째서 나는 이 음식 앞에서 코끝이 찡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오늘부터는 너무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너무 맛있는 요리를 마주할 때 어째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걸 기억해내서 안타까와 해야 하는지 묻지 않겠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다음에 가족모임을 이곳에서 갖기 위한 사전 답사라고 생각해야지. 다음 퇴근 길에는 깐풍기와 칠리새우 포장을 부탁해서 가지고 가면 되니까.